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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어린왕자’ ‘앵무새 죽이기’ 등 세계 명작을 한국 독서 시장에 처음 소개, 세계 문학 출판의 토대를 마련한 전병석(사진) 문예 출판사 창업주가 23일 병환으로 별세했다.

1937년 충청남도 홍성,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청소년 시절, 책에 대한 굶주림이 너무 컸기에 청소년들이 마음껏 볼 수 있는 책을 만드는 출판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고인은 1966년 나이 서른에, 서울 종로구 도렴동 10평짜리 사무실에서 문예 출판사 문을 열었다. 처음 내놓은 책이 국민적인 베스트셀러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많은 독자가 서점에서 ‘데미안’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검토해, 내놓은 책이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에 ‘데미안’에 대한 독후감이 실려있어 많은 독자가 궁금해했지만 정작 책이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데미안’은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돼 문예 출판사의 기반을 닦게 했다.

이어 고인은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세계 문학과 세계 문학 고전 목록을 제공하겠다며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등을 잇따라 출간, 1970~1980년대 걸친 세계문학 시장을 이끌었다.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는 그해 10만 부 이상 팔렸다. 이어 1983년 권영민의 ‘한국근대문학과 시대정신’을 시작으로 ‘한국문학연구총서’를 발간했고, 우리 미술의 역사를 총정리한 ‘한국 미술사’(진홍섭 외) 등 2000여 종의 단행본을 펴냈다. 평소 출판에 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고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고전의 힘을 알려주고 싶어 ‘명심보감-바른 삶 실천을 위한 교훈서’ ‘알기 쉽게 풀이한 논어’를 내놓기도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한국출판연구소 이사, 출판저널 편집인,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간행물윤리상 대상, 한국가톨릭매스컴상 시상식 출판부문 매스컴상 등을 받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