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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클래식 현악기 연주자들은 보통 3∼6세에 악기를 처음 잡는다. 몸의 근육이 악기를 연주하는 데 적합하게 발달하는 시점이 그때쯤일 것이다. 모든 연주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예술학교에 진학해 유학을 준비하고, 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재’ ‘신예’ ‘루키’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 성인과 비슷하게 키가 자라면 국제 콩쿠르 준비에 몰두해 입상자 명단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협연이나 리사이틀, 음반 발매의 기회까지 얻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는 극소수 엘리트에게만 해당되는 코스다. 뛰어난 재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스스로의 엄청난 노력이 있지 않으면 연주자로서 이름을 알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다음이다.

국제 콩쿠르의 나이 제한을 넘긴 30대가 되면 관객 앞에는 오롯이 ‘연주자’와 ‘음악’만이 남는다. 운동선수처럼 전성기가 뚜렷한 게 아니라서, 최근의 예를 들자면 일흔다섯의 피아니스트 엘리소 비르살라제가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오랫동안 기다린 팬들에게 완벽에 가까운 경지를 보여줬다. 동네 피아노학원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 노장의 몸을 타고 새로운 빛으로 발현했다.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한없이 원숙해지는 클래식 음악을 우리는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지난 7일,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사진 왼쪽)가 피아니스트 문지영(오른쪽)과 함께 선보인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는 학구적 접근과 진지한 연구가 엿보인 성숙한 무대였다. 20대의 화려한 콩쿠르 이력을 뒤로하고 30대를 맞은 그녀는, 1856년 사망한 작곡가 슈만이 말년에 쓴 세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선곡했고, 앙코르까지 슈만의 곡으로 채워 넣었다. 극심한 정신병으로 환각에 시달리던 슈만의 심리적 갈등, 불안 등 복잡한 내면세계가 드러난 곡들이다. 비슷한 시대에 쓰인 바이올린 소나타에 비해 음역대가 높지 않고, 진중하면서도 격정적인 표현력이 큰 울림을 준다. 리사이틀에서 자주 선택되는 곡은 아니다.

김다미와 비슷한 또래의 바이올리니스트인 김수연이 여성미가 돋보이는 섬세한 연주를, 임지영이 추진력이 강한 선 굵은 연주를 들려주는 데 비해 김다미의 소리는 마치 지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 같았다. 사치스러운 화려함을 지우는 대신 중음역의 안정적인 소리에 힘을 받아 우아하고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프레이즈에 확신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굴곡을 만들어 나가는 한편, 순간순간 신중한 태도가 청중의 몰입을 이끌었다. 슈만의 어두운 내면이 강하게 드러난 3번에서는 애수를 머금은 채로 깊은 정서의 폭을 아우르고, 이어진 2번에서는 다이내믹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며 비르투오소의 면모를 드러냈다.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김다미와는 처음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두 사람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슈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여러 인터뷰를 통해 슈만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 문지영은 김다미와 정확히 같은 방향성을 지닌 듯 보였다. 깔끔한 페달링으로 리드미컬함을 드러내면서도 절제를 잃지 않으며 최고의 파트너가 돼주었다. 이날 두 사람은 마치 한편의 인문학 강의처럼 관객에게 사색하는 여름밤을 선사했다.

한국인 연주자가 국제 콩쿠르에서 거둔 성과에 관심을 두는 일만큼 실력 있는 연주자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그 행보를 응원하며 오랫동안 아껴주는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 클래식 음악계가 풍요로워지는 어쩌면 유일한 길일 것이다.

김다미는 오는 8월 14일 정명훈이 지휘하는 대전시향과 브람스 협주곡을, 11월 16일 귄터 피힐러가 지휘하는 슬로바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자크 협주곡을 연주한다.

음악 칼럼니스트 writerh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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