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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6일 평양에 도착한다. 미 국무부에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든,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똑같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어떤 성과물을 들고 올지는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우리와는 달리 미국 조야에서는 우려가 매우 강하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오히려 북한의 비핵화가 멀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비핵화와 관련한 어떤 움직임도 없다고 보고 있다. 핵과 미사일 실험 동결이 비핵화를 위한 중요한 시작임은 분명하나,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訪北)을 앞두고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시간표를 받아야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신고 리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성과물이 나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 상황을 보면 그런 성과를 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시간표와 리스트 제출은 북한이 미국 및 국제사회의 사찰과 검증을 수용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북한이 사찰과 검증을 받아들임에 있어 조건을 내걸 것이 분명한 만큼 그 요구 조건을 가지고 협상이 시작됐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폼페이오 장관의 협상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협상 담당이 안 정해진 것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의사조차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방북은 국내적 비판에 직면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인 측면이 크다. 초조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도 버틴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걸 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북한이 이렇게 비핵화 협상에 대해 소극적일 경우 우리가 우려하는 미국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이 원하는 대로 협상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과거의 핵을 놔둔 채 미국을 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일정 수의 핵탄두를 제거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고갈돼 다시 압박으로 돌아서는 것인데, 제재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군사적 긴장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협상을 통한 평화적 비핵화를 위해선 북한이 비핵화로 나서기까지 경제적·군사적 압박을 유지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낙관론에 기대어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지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낙관론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에 너무 많은 것이 달려 있다. 협상의 문턱을 낮추는 것도, 급작스럽게 군사적 위협으로 돌아서는 것도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으로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에 대해 한 이야기들은 이미 급속도로 현실화하고 있다. 그는 동맹의 가치를 낮게 보기 때문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가치 역시 매우 낮게 본다. 가치도 없고 돈만 많이 드는 훈련을 내주고, 혹시라도 북한이 비핵화로 나서게 된다면 더없이 좋은 거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막연한 계산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없다.

폼페이오 장관이 얼마나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이번 방북 길에 올랐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비핵화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해질 때 과연 우리의 입장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안보에선 낙관보다 비관에 근거하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