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性폭력 사실관계 아직 불확정
주장 거짓일 땐 수상 취소를”
崔시인 “미투운동 더 전진해야”

“지난 38년간 여성운동 현장에서 글을 쓰던 사람으로서 최영미 시인의 거짓에 모독감을 느꼈다.”

소설가 윤정모(72·사진), 시인 차옥혜(73) 씨 등 여성 문인 36명이 3일 최영미 시인이 ‘미투(Me Too) 운동’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서울시로부터 성평등 대상을 받은 것에 대해 반대하며 서울시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소설 ‘고삐’ 등으로 잘 알려진 윤정모 작가는 4일 “최영미 시인과 시 ‘괴물’에 대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실 확인과 조사 절차를 생략한 서울시의 수상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어제 시상식이 거행되기 직전 ‘성평등상 대상 선정은 취소되어야 한다’는 의견서를 서울시에 제출하고, 여성가족정책실을 항의 방문했다”고 밝혔다.

윤 작가는 “우리는 성평등 사회를 희구하는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 그러나 고은 시인의 성폭력의 실체는 아직 사실관계도 확정되지 않았다”며 “이번 수상 결정은 불공정과 절차상의 오류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항의에 대해 서울시 측은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고 여성 문인들은 전했다. 윤 작가는 “수상의 근거로 구체적 공적사항이 무엇인지 제시해달라고 하자, 서울시는 ‘여성 단체의 추천이 있었다’고만 했다”며 “또 최 시인의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될 경우 수상을 취소함과 동시에 이미 철거된 고은 시인의 ‘만인의 방’도 다시 개관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 서울시가 발표한 시상식 날짜는 6일이었는데 갑자기 3일로 당겨지면서 우리도 서둘러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발 이후 최 시인이 시 ‘괴물’을 통해 고 시인의 성폭력을 고발한 것이 새삼 조명받게 됐고, 고 시인의 기존 행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와 관련, 문학계 일각에서는 고 시인의 행적이 성폭력과 관련해 비난받을 소지가 있지만 과장된 풍문과 함께 그의 문학 전체가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해왔다.

한편 시상식에 참석한 최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미투 운동이 더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랫동안 존재했던 악습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는다”며 “당분간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니, 미투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보수적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시인의 시가 교과서에서 삭제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최 시인은 “고 시인의 시가 생명력이 있다면 교과서에서 빼든 아니든 살아남을 것이고, 생명력이 없다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