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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가 영어공부책 내기까지…

이성주 씨가 생애 처음으로 알파벳 A, B, C를 본 것은 사춘기를 훌쩍 넘긴 17세 때였다.

2002년 한국에 온 탈북민인 그는 영어로 쓰인 ‘LOTTE CINEMA’ 간판을 읽지 못해 친구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나올 때까지 영화관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하굣길에 ‘폭탄 SALE’이라고 적힌 백화점 전단지를 받고는 “남한에서는 돈만 있으면 아무한테나 폭탄을 판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이 씨는 평양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추방당했다. 북한에서 인민학교(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그는 12세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꽃제비 생활을 했다.

영어 문맹인 그에게 한국은 너무나 낯설고 팍팍했다. 17세에 늦깎이 중학생이 된 그는 첫 영어 시험에서 0점을 맞았다. 이후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 때 영어 교수님은 그의 영어 에세이를 수작이라며 학내 게시판에 걸어 놓았다. 북한에서의 꽃제비 생활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 ‘거리 소년의 신발(Every Falling Star)’을 영어로 직접 집필해 출간했고, 최근에는 영어공부법을 담은 책 ‘나의 1·2·3 영어공부’(사진)를 펴냈다. 영미 언론에 책이 소개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BBC방송사 등 해외 언론사에서 기자직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다. 오는 9월에는 미국 국무부의 풀브라이트 박사 과정 장학지원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한국 학생들은 학창 시절 10년을 투자해도 영어 공포증에 시달리는데, 17세에 영어를 처음 접한 이 씨가 경지에 오르게 된 비결이 따로 있을까.

그는 “영어는 학습이 아니라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며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면 영어 성적은 잘 받을 수 있어도 실제로 영어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했다. 영어 습득 방법으로 그는 ‘단어장을 사지 않고 직접 만들기’ ‘영어 영화를 습득할 때까지 반복해서 보기’ 등을 추천했다.

이 씨는 “영어를 배우려고 처음 본 영어 영화가 애니메이션인 ‘니모를 찾아서’였다”며 “처음엔 그냥 한 번 보고 그다음엔 영어 자막을 보며 어떤 내용인지 익힌 뒤, 그다음에 볼 때는 모르는 단어를 받아 적고, 그다음에는 대사를 소리 내서 읽어 보고, 마지막에는 그냥 영화를 봤는데 신기하게 다 들리더라”고 했다. 그렇게 한 달에 한 편씩 12편의 영화를 마스터했다. 영어 문법책의 스테디셀러인 ‘GRAMMAR IN USE’는 영어 작문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런 영어공부법을 담아 지난 5월 그는 ‘나의 1·2·3 영어공부’를 출간했다. 올가을부터 이 씨가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미국 조지메이슨대학 롤랜드 월슨 교수는 “이성주는 내가 아는 원어민이 아닌 사람 가운데 가장 영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다”며 “영어를 쉼표까지도 정확하게 활용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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