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의 대안으로 혁신성장과 그 전제로서 규제 완화를 집중 거론하고 있지만, 아직은 말잔치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제2차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전격 취소하며 “답답하다”고 한 이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적극 자세로 돌아섰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질타하면서 야당을 향해 ‘규제혁신 5법’ 논의 협조를 당부했다. 지지부진한 규제개혁을 관료와 야당 탓으로 돌린 셈이다. 물론 1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1차 회의에서 당장 풀어야 할 과제 38건을 추린 뒤,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한 27건부터 완료하겠다고 했다. 이후 10여 개 부처가 5개월 넘게 준비한 답안지는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퇴짜를 맞았다. 규제개혁의 최대 걸림돌은 관료의 타성이다.

여당의 처신은 적반하장에 냉탕온탕식이다. 야당 시절 규제프리존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대표적인 탈(脫)규제법을 기를 쓰고 반대해 무산시킨 민주당이다. 정권이 바뀌자 규제 샌드박스를 키워드로 한 규제혁신 5법 대변자로 나섰다. 그러다 보니 큰 틀에서 유사한 여야의 신·구 규제 완화법이 경쟁하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 일부 의원은 “규제를 풀면 기득권층에 혜택이 집중될 것”이라며 반기를 들고 있다. 한편에선 상법·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 오히려 규제를 덧씌우는 법안 지지에 앞장서고 있다. 혁신성장을 유도할 노동시장 개혁은커녕 경직성을 키우는 비정규직·최저임금·근로시간 규제 도입에만 열심인 문 정부다.

문 대통령은 “경쟁국은 뛰어가는데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며 혁신성장 속도전을 거듭 주문해왔다. 전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규제개혁 끝장회의도 마다하지 않았으나, 기억에 남는 건 전봇대와 푸드트럭 정도다. 이해관계 집단들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논란이 되는 핵심 규제들도 정권의 이념 성향과 무관치 않다. 큰 규제를 양산하면서, 작은 규제 몇 개 푼다고 될 일도 아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리해줘야 일선 관료들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