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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 중국정치경제학

美·北 정상회담 뒤 지지부진
중국 개입으로 상황 더 복잡
트럼프式 비핵화 의구심 증폭

폼페이오 방북으로 이제 本협상
즉각 核 전면 신고→1년 내 폐기
남북관계, 核폐기 앞서면 안 돼

6·12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도 성사되지 않고 미국이 비핵화 절차 요구나 시기도 못 박지 않자 비핵화 의지 퇴색에 대한 우려가 대두됐다. 이 틈에 북한은 ‘북·중 전략·전술 협력 강화’를 천명하면서 중국을 비핵화 협상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였고, 미국은 다시 의심의 눈초리로 중국을 보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5일 방북 길에 오르고, 1일 판문점에서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가 이끄는 미 북핵 협상팀이 북측과 실무 접촉을 했다. 때마침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1년 안에 폐기할 수 있다며 비핵화 시간을 제시하고 대북 압박에 나섰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기존 핵무기와 핵 시설, 핵물질 등에 대한 신고 검증 문제와 관련한 요구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더불어 백악관의 대북 협상 라인도 재정비한다고 한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까지 얻어냈지만, 오히려 중국을 확실한 우군으로 확보하고 대미 공동 전선을 펼치는 형국이다. 미·북 간 핵 협상을, 북핵 폐기보다는 핵보유국 간의 군축 협상으로 변질시키려는 전술이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합의와 중국의 전략적 지위를 이용, 군사적 압박 해제에 이어 경제적 제재 해제나 완화를 노릴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중 접경지역을 순시하고, 북한의 구본태 대외경제성 부상이 중국을 방문해 본격적인 경제 협력의 복선과 의지를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도 이 틈을 이용해 북핵 문제의 중재자에서 당사자로의 전환을 천명했다. 북핵 문제가 미·북 간 문제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이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3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미 협의 구도를 남·북·미·중 구도로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을 통해 중국이 줄곧 주창해온 북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뜻하는 쌍중단과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동시 진행이라는 쌍궤병행을 관철시켜 단계적 비핵화를 기정사실화했다. 최근에는 비핵화의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과 전략은 정책적으로 모호하다. 신속한 단계적 비핵화를 뜻하는 ‘트럼프식(式) 비핵화’는 북한 압박보다는 대북 협상 동력 유지에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아무도 하지 못했던 북핵 위협을 종식시켰다고 주장하면서 북핵 문제를 일정 부분 대중(對中) 압박 카드로 보는 측면도 있다. 미 의회가 대북 협상과 향후 진행 상황에 대해 30일마다 서면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대북정책 감독 2018법안’을 상정해 완전한 비핵화(CVID)라는 목표 달성까지는 최대의 압박과 경제 제재 유지를 강조한 것도 비핵화 본질에 충실하라는 경고다.

남북 협력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비핵화 협상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미·북 비핵화 협상 속도를 앞서가는 모양새는 곤란하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해병대 연합훈련 중단도 모자라 북한은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일대 정찰 중단, 포병 병력의 후방 배치를 거론하고, 적십자회담에서는 탈북 여종업원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생존 이산가족이 5만6000명이나 되는데 100명 상봉이 과연 통 큰 결단인지도 묻고 싶다. 북측의 실질적인 비핵화 의지와 진정성 표시 행동에 맞춰 신중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반도가 평화 정착의 일대 전기(轉機)를 맞은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차적이지만, 비핵화 조치 없이 무리한 요구를 지속하는 북한에 대해 비핵화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음을 분명히 각인시키는 단호함도 필요하다. 비핵화 과정에서 전개되는 미·중 간 경쟁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중간자적 이익 극대화를 위해 미·중과 직접 대화하지만, 한국은 중국과의 소통도 어렵고 동맹을 비용 문제로 판단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한·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미·중 사이에서의 운신이나 남북 협력에 대한 조바심보다는 비핵화 본질에 충실한 한·미 공조와 한·중 협력 강화가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