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루벤스,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 목판에 유화 36.2×26.4㎝, 1623년. 크리스티 제공

5년전 ‘루벤스 그림’ 경매 처분
僞作으로 착각… 이유는 不明

만약 앞날 일을 알 수 있다면 사람들은 행복할까. 하지만 앞날을 모르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미래가 늘 밝고 행복한 것은 아닐 터이니. 그래서 앞날의 일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지난날에 대한 후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때 만약 그것을 알았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이 전제된 후회막급한 말들이 늘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은 미술동네에서도 왕왕 일어난다. 최근에도 얼마 전 가짜라고 알려졌던 루벤스의 그림 한 점이 진작으로 밝혀져 미술시장에 나오면서 그 작품을 팔았던 이는 정신이 나갈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정신이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뉴욕의 속칭 ‘메트’라고 불리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라면 글쎄 그 파장은 어떨까? 메트는 5년 전인 2013년 소장품을 정리하면서 이 작품을 경매를 통해 처분했다. 그런데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 내외의 추정가에도 불구하고 그 30배에 달하는 62만 달러(약 6억7000만 원)에 한 영국인 컬렉터의 손에 들어갔다. 아마도 미술관은 예상했던 가격보다 많은 낙찰가에 쾌재를 불렀을 터이다.

하지만 이렇게 낙찰가가 급등한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작품을 진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메트만 몰랐던 것이다. 아무튼 그리고 5년이 흐른 지난 7월 5일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 5년 전 낙찰받았던 가격의 10배에 달하는 300만∼500만 파운드(44억∼73억 원)의 추정가에 이 작품이 다시 등장했다. 물론 낙찰가와 낙찰받은 새로운 소장가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메트조차 진품이란 사실을 모르고 판매한 이 통한의 작품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작품은 바로 궁중화가이며 외교관으로, 빛나는 색채로 생동하는 에너지가 넘쳐나는 바로크회화를 완성시킨 루벤스(1577∼1640)가 그린 애지중지하던 딸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1611∼1624)의 초상화(36.2×26.4㎝)였다. 슬하에 8명의 자녀를 두었던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얻은 첫째 딸 세레나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5세 때 딸 초상화를 그렸고 그 딸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623년에 다시 그린 초상화가 바로 이 작품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메트가 왜 진작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실 진품으로 인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소장 경위(Provenance)가 분명하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의문이 간다. 사실 이 작품은 이미 루벤스의 장인인 얀 브란트(1559∼1639)의 재산목록에 실려 있었고 이후 1750∼1850년 사이에 프랑스로 팔려왔고 다시 1900년 들어 미국으로 건너와 1955년 금융업에 종사했던 조제핀 베이 파울(1900∼1962)에 의해 기증된 작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루벤스의 진작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미술관은 1960년 루벤스의 제자의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이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있는 루벤스의 집과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등 권위 있는 미술관의 전시에 출품되면서 진품이라는 학계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렇다면 사돈이 땅만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지금 메트의 심정은 어떨까. 공식적으로는 ‘우리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미술관의 진작에 대한 강박증 때문은 아니었을까.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번 주부터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舌說)’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정 씨는 국내외 주요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가는 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실장(1996∼2006)을 지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