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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하려는 일이) 의롭지 않은지 두려워하고,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며, 상관의 국정운영 방향과 어긋나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라. 이 네 가지 두려움을 늘 간직하면 방자한 관리가 되지 않을 것이며, 그나마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새로 부임하는 수령에게 일러준 마음자세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먼저 내 마음속 시비분별의 가늠자에(안) 비춰보고, 나라의 법에(밖) 맞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그 일이 상급 기관의 정책 방향과 조화를 이루는지(위) 검토해보고,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인지를(아래) 숙고해보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헤아림의 중심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정약용의 조언이다.

‘설문해자’를 보면 두려워할 외(畏) 자는 귀신 머리(鬼頭)와 호랑이 발톱(虎爪)을 결합한 회의(會意)문자다. 몹시 두렵고 무섭다는 뜻이다. 어두운 산길을 가는데 귀신 얼굴이 언뜻언뜻 나타나고, 호랑이 발톱이 등 뒤에 닿을까 말까 하는 상황이다.

사회윤리에 어긋난 자기 허물이 언론에 들통날까 두려워 늘 위축돼 지내는 공인, 선거법 위반 등으로 직무정지 당하고 감옥에 들어간 지자체장, 그리고 소속 정당에서 공천을 못 받아 무소속으로 외롭게 선거를 치러야 했던 후보들은 아마도 그 두려움의 크기를 실감할 것이다. 정약용은 수령이 마지막으로 두려워할 대상으로 백성을 꼽았다. 그 이유는 백성이 위의 세 가지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벼슬살이 성패의 요체가 온전히 백성들의 평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이 하려는 일이 사회통념에서 벗어나고, 법 규정에 들어맞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상관의 정책 방향과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얽매여 백성을 잘살게 하는 길을 포기하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 수령들이 ‘큰 원칙은 지키되 실정에 맞게 변통하는’ 재량권을 발휘해야 한다는 게 정약용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온갖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백성 삶의 질 향상이라는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그 모든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게 목민정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미지 크게보기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 세종의 취임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세종은 1418년 9월 9일 경복궁 근정전에 나아가 자신의 국정운영 방침을 밝혔다. 취임사에서 그는 먼저 이전 임금들이 이뤄놓은 성과를 계승하겠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고, 새 단체장이 취임하면 그동안의 업적을 모두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시인발정(施仁發政)하는 정치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백성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자세히 들어보고(施仁), 그에 맞춰 정책과 법제를 세우겠다는(發政) 말이었다. 국가에서 주요 정책을 제시한 다음(發政), 그에 따르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施仁) 종래의 하향식 정치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실제로 그는 백성들의 의견을 물은 다음 관리들에게 그 시행방안을 찾게 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새로 선출된 지역의 리더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만이다. 주민들의 생각을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만났던 주민과 지역 행정을 추진하면서 만나는 주민은 판이하다. 악수는 적당히 웃으면서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일을 애매하게 처리하는 지자체장을 적당히 넘길 주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지역 리더들이 늘 귀신 머리와 호랑이 발톱을 생각하면서 일에 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가는 마음으로 세종이 했던 것처럼, 백성의 입장에 서서 청정(聽政)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성과 거두는 행정을 실천해 4년 뒤 주민들의 평가를 후히 받는 지자체장들의 소식을 자주 들었으면 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