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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6·25전쟁 68주년을 맞은 오늘, 계속되는 국가안보 위기로 인해 국민의 마음은 무겁다. 북핵 폐기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한·미 연합군사훈련뿐만 아니라 우리 군의 자체 훈련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종전선언 약속과 같은 미·북 싱가포르 비밀 합의 사항들이 하나둘 공개되고 있다. 우리는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가쓰라-태프트 비밀 각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논의한 1945년 얄타 비밀 회담, 주한미군 철수를 합의한 1971년 헨리 키신저-저우언라이(周恩來) 베이징 극비회담 등을 통해서 강대국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좌지우지됐다는 통사(痛史)를 기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론’이 ‘깜깜이 외교’를 초래하고 나라의 운명을 미·북에 내맡기는, 한국외교사에서 전례 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을 제쳐 두고 김정은을 직접 상대하면서 대한민국의 국익은 실종되고 한국 외교는 ‘외톨이 외교’로 전락하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핵을 포기하고 북한 동해안에 호텔과 관광시설을 건설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혁명적 전체주의 체제’를 위해 핵이 꼭 필요한 김정은이 핵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한국 정부들이 모두 실패한 ‘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에 따라 북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부동산 독트린’(real estate doctrine)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독트린’은 냉전 초기 대(對)소련 봉쇄정책을 추진한 ‘트루먼 독트린’과 강력한 군사적 우위와 인권을 무기로 소련의 붕괴를 촉진한 ‘레이건 독트린’과 달리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의 북핵 폐기에 대한 기대가 뜻대로 안 될 경우 그 후과(後果)는 한국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것이다. 문 정부는 지금이라도 ‘민족 공조 노선’을 버리고 한·미 동맹과 국제 공조를 중시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안보 의식은 매우 해이해지고 있다. 최근 민주평통의 기관지에, 천안함 폭침 사건을 재조사하여 북한 소행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한국 정부가 북한에 사과해야 한다는 글이 실렸다.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헌법기관에서 이런 내용의 글들이 버젓이 실린다는 것은 국민의 안보 의식이 위험 수준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천안함 46용사’를 이런 식으로 계속 우리 사회가 모욕한다면 앞으로 어느 젊은이도 조국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6·25전쟁 기념일을 맞아 천안함 용사들과 북한의 남침에 맞서 목숨을 바친 호국 선열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들의 호국 정신을 선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호국보훈의 달은 ‘한국적 시민종교’를 함양하는 날이 돼야 한다. 호국 선열들에 대한 영광스러운 기억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종교적 영속성을 갖고 계속돼야 한다는 점에서 호국보훈 정신은 ‘시민종교’ 차원으로 승화돼야 한다. 호국 선열과 천안함 46용사는 ‘자신의 영혼보다 조국을 더욱더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의 영달보다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이었다. 안보 위기를 맞아 호국보훈의 달이 호국 선열들과 천안함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국가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한국적 시민종교’를 함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