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만큼 한국 근대화 반세기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사람은 없다. 지난 23일 타계한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바로 산업화·민주화에 대한 평가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5·16을 놓고 절대빈곤과 부패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의 혁명이냐, 민주주의 싹을 자른 군사쿠데타냐의 논란부터 1960년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 문민정부의 토대가 된 1990년 3당 합당, 수평적 여야 정권 교체에 기여한 1997년 DJP 연합까지 현대사의 굽이굽이마다 그의 족적이 논란과 함께 뚜렷이 남아 있다.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영욕과 명암이 교차하고 있기에 한 마디로 평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할 만하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시대적 과제의 실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대립적 관점이 아니라 선후와 상생의 관점에서 본다. 산업화를 통해 중산층과 고학력층이 형성됐고, 이들이 민주화를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화와 타협을 실천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했다. 이는 갈수록 극단이 판치는 한국정치에 살아 있는 교훈이다. 지지 기반이었던 군부·보수 세력과 등을 돌리면서 문민정권, 다음에는 ‘민주화 대통령’과 ‘호남 정권’ 출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3김 정치의 폐해인 지역주의 등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타계로 한국정치사의 한 장(章)이 마무리됐다. 여야와 이념을 떠나 많은 사람이 애도하고 있다. 국립묘지 안장조차 사양한 그가 굳이 원하지는 않겠지만, 국민훈장을 추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의 유산 중에서 좋은 것은 계승하고, 나쁜 것은 버리면 될 일이다. 초반에 중시했던 안보와 경제, 후반에 시도했던 내각제와 협치는 변함없이 중요한 가치들이다. 그는 미리 작성한 묘비문을 통해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 없음)’를 강조했는데, 정치인은 물론 국민 모두 옷깃을 여미고 생각해볼 만한 화두다.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