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입인력 기준 대가’ 조항 탓
머릿수로 갑질 겪는 상황 흔해

“금융감독원 등이 지도 나서야”

최근 A 은행과 소프트웨어 공급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수행한 B 사는 금융권의 낡은 ‘헤드 카운팅’(Head Counting·사람 머릿수를 헤아려 비용 지불) 계약 관행에 혀를 내둘렀다. 이 계약에는 일반적인 턴키(turnkey·일괄) 계약 외에 헤드 카운팅 조항이 추가로 삽입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턴키 계약에 따른 의무인 ‘약속된 기한 내에 완성된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헤드 카운팅 조항에 의거 ‘투입되는 인력을 기준’으로 대가를 받아야 한다. 가령, ‘100명 투입’으로 계약했다면, 경과에 따라 20~30명이 할 수 있는 단계가 돼도 그대로 인원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 개발자들이 발주사(은행)에 나가 머릿수를 확인받아야 돼 ‘갑질’을 겪는 상황도 흔하다. 실제 헤드카운팅 조항을 근거로 별 이유 없이 개발자 교체를 요구하거나, 친분이 있는 개발자 투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 해외에서 학위를 받은 한 개발자는 “4차산업 시대에 구석기시대에나 있을법한 금융권과의 계약 형태”라며 “성과가 아닌 머릿수에 근거해 대가를 받는 관행이 정말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22일 소프트웨어 업계에 따르면, 금융권의 낡은 관행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해외에 없는 기형적 형태의 계약으로 △기업·국가 소프트 경쟁력 약화 △개발자 처우 악화로 인한 인력 유출 △발주사의 갑질 발생 등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당한 계약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대형 고객인 금융업체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한다”고 호소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폐단을 인식, 지난 4월 전자정부사업에서 ‘공공기관이 인력별 투입 기간을 관리할 수 없음’을 명시한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 정보시스템 구축 및 운영지침’ 일부 개정안을 고시했다. 변화가 늦은 공공 부문에서마저 심각한 폐단을 인식, 관행 개선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민간 영역은 여전히 잠잠하다.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에서 공공 부문 비중은 18%에 불과해 민간에서의 변화가 이뤄져야 전반적인 관행 개선이 가능하다. 특히 민간의 25%가량을 차지하는 금융권에서의 관행 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행안부 움직임대로 은행연합회 등 업권별 협회나, 금융감독원이 지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