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새벽·서울 서초구

적막한 새벽녘,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아파트단지를 울렸다. 1995년 6월 8일 새벽 3시, 열여섯 살의 중학생은 아파트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주차된 차 위로 떨어졌고, 그는 피를 흘리며 올라가 복도 창문을 다시 넘었다. 그렇게 그의 뜨거웠던 심장은 멈추어 버렸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전 이사장인 김종기 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책의 한 대목이다. 두 번씩이나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두려움보다도 학교 폭력이 주는 고통이 더 컸기에 그런 가슴 아픈 일이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학교폭력의 생존자들은 직간접적인 폭행에 상처를 입는다. 가해자들의 무책임함, 학교의 방관,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두 번째 상처를 입는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그 상처가 쉽게 치유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후에도, 생존자들은 많은 아픔의 흔적을 갖게 된다. 지독한 대인공포를 느끼거나, 스스로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게임이나 술을 도피처로 선택하는 사람도 많다. 한마디로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회복불능으로 말이다. 학교 폭력의 후유증은 가족들 간에도 남게 되고, 학업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사회적으로 낙오되며, 군대에서는 관심 사병으로, 대학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직장에서는 조직 부적응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생존자들 자신에게 학교폭력은 분명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 나와는 관계없는 - 사고 때문에, 한순간에 망가진 인생이 됐다는 서글픔이 마음에 가득할지도 모른다. 학교폭력의 상처는 혼자서는 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노련한 전문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부의, 학교폭력을 머리로만 공부한 사람이 주는 도움은, 생존자들이 마음의 문을 더욱 꼭 닫아버리게 한다. 목이 마르다는데 피자, 치킨을 주는 격이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것은 마치 더욱 열심히 더 많은 피자와 치킨을 주려고 하는 것과 같다.

학업을 위해 차선으로 선택한 대안학교에서도, 학교 폭력이 있다는 뉴스는 종종 들려온다. 홈스쿨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의 생존자들에게는 무엇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생존자들에게는 그들만의 매우 특수하고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섣부른 접근은 역효과를 부를 뿐이다.

학교폭력을 직접 겪어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학교폭력 피해 전문가들이 절실하다. 군대에 대한 책을 많이 읽은 여성이 병영상담을 하고, 출산의 경험이 없는 남성이 임신부들의 어려움에 대해 조언해준다면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

책과 상담 그리고 자격증 등 간접 경험만으로는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입체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다. 학교폭력에 대한 처절한 직접경험과 방대한 간접경험이 동시에 있는 전문가라야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학교폭력을 이해하는 그런 전문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