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석원 조각가가 ‘적의(積意)’ 시리즈 조각품 사이에 서서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석원 조각가, 노화랑서 개인展

“김종영 추상조각은 생명체의 변형입니다. 제 추상조각은 그와는 다릅니다. 자르고 접합하는 과정을 통해 저는 새로운 경계와 공간을 창조해냅니다.”

국내 화단에서 ‘미니멀 추상 조각의 선구자’로 알려진 조각가 박석원(76)이 오랜만에 상업화랑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박석원은 ‘적의(積意)’ 시리즈 작품을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20일부터 7월 10일까지 전시한다.

그의 전시는 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 등 공공 기관에서 주로 열렸고, 바로 이전 전시도 2014년 경남 창원의 도립미술관에서 열렸었다. 보기 드물게 화랑에서 열리는 조각 전시여서 그런지 적의(積意)라는 전시 타이틀처럼 스테인리스 스틸과 나무, 돌 등의 재료를 하나하나 쌓아(積) 인간의 마음(意)을 형상화한 둔탁하면서도 묵중한 작품들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일반적으로 박석원은 김종영(1915∼1982)과 같은 추상조각가로 알려져 있지만 미학적 바탕은 엄연히 다르다. 김종영은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동양 정신에 뿌리를 두면서 브론즈와 철 등 서구적인 재료와 미학을 추상 조각에 결합해 조각세계를 창조해냈다.

반면 박석원의 작품 세계는 1969년에 결성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에 맥이 닿아있다. 당시 AG는 “전위 예술에의 강한 의식을 전제로 비전 빈곤의 한국화단에 새로운 조형질서를 모색 창조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10명의 작가와 2명의 평론가가 함께 모여 잡지 ‘AG’를 발행하면서 시작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초토(焦土)’ ‘비우(悲宇)’ 등의 작품으로 1968년과 1969년 국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박석원은 바로 그 창립멤버 중 하나였다. AG가 서승원, 이승조, 하종현 작가 등에 의해 1970년대 중반의 단색화로 발전했다면 조형 부문에서는 박석원에 의해 오늘의 ‘미니멀 조각’으로 확장된 셈이다.

“적의의 작품 원리는 간단해요. 나무나 돌 등 물질이 있으면 토막 내고 잘라내죠. 자름으로 해서 개체는 내면의 구조를 보여 줍니다. 물론 자를 때는 제 원칙을 따르고요. 이 자른 것에 스테인리스 스틸 등 비자연적인 것을 개입시켜 접합하면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화 과정을 통해 제 정신세계의 본질을 탐색합니다.”

핸들과 같은 둥그런 모형을 쌓아 올린 그의 작품은 인도계 영국 조각가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재언(미술평론가) 인천아트플랫폼 관장은 “소음 과잉의 현대사회와 달리 단순 구조에서 오는 과묵함과 진지함, 관조와 명상의 미학적 구도가 박석원 조각의 특징”이라며 “작가가 다 말하기보다는 질료가 말하게 하며, 관객이 작품으로 들어가 사유하고 상상하게 해 힐링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