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회평 논설위원

검색창이 모두에게 공평한 정보를 제공할 거라고 믿었다면 착각이다. A와 B 두 사람이 예컨대 ‘여름 휴가’를 치면 검색된 정보의 배열과 광고 내용이 달리 뜬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 사례는 극단적이다. 전 세계 사용자 1억2500만 명이 모두 다른 메인 화면을 갖는다. 이용 전력에 따라 액션, 또는 드라마 위주로 채운 화면을 보여주는 ‘취향 저격’이다.

인터넷 등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전 세계 시민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대한 정보량은 역설적으로 소통의 장애물이 됐다.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이용자들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 구글 등의 정보 필터링이다. 특정인이 관심을 두는 것, 비슷한 부류가 찾는 것 등을 추적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분명 기술 진전이지만 ‘위험한 칼’이 숨어 있다. 공짜 서비스 대가로 제공한 개인의 은밀한 정보는 포털·SNS·상거래 업체의 수익원이 된다.

미국의 온라인 시민단체 지도자인 엘리 패리저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보수 성향 친구들의 흔적이 사라진 것을 감지했다. 반대편 시각도 접하고 싶었지만, 진보적 인사들과 자주 접속하는 것을 파악한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차단해버린 것이다. 그는 저서 ‘생각 조종자들’에서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여과된 정보에 거품처럼 갇히는 현상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했다. 개인은 특화된 정치·문화·이념·관계 속에서 편안할 수 있지만, 사회 전체로는 퇴보 소지가 크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아예 제쳐놓고 민주주의를 말하긴 어렵다. 창의성도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충돌할 때 튀어나오는 것이다.

네이버와 구글은 지난달 인공지능(AI) 추천 서비스 강화 방침을 동시에 내놓았다. 가짜뉴스나 편집권 비판에 대한 대응 성격이지만, 인간의 주관마저 빠지면 확증 편향은 더 심해질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프라인에서도 필터 버블은 보인다. 1년 새 더 커진 양극화 뒤엔 ‘최저임금’ 그림자가 뚜렷한데도 청와대는 교묘하게 편집한 통계로 진실을 가렸다. 고용참사까지 터졌지만 봄비, 인구 탓이다. 지방선거 압승 후 듣기 거북한 비판에는 “민심의 평가와는 동떨어진 것”이라고도 했다.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에 가두는 필터 버블은 민주주의와는 다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