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핵·미사일 문제에 가려 있던 북한 장사정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장사정포를 북한 후방으로 퇴거(退去)하는 문제가 지난 14일 제8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거론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부인하고 있고, 또 남북 어느 쪽이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향으로 문제를 제기했는지 등 모든 상황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장사정포는 핵·미사일과 함께 북한 3대 핵심전력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기회를 활용해 장사정포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정하고, 위협 제거를 위해 적극 나설 책무가 있다.

북한 장사정포는 통상적 군사 전력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불사하는 극도로 비인도적인 공격 수단이다. 장사정포는 2500만 명의 수도권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인질로 삼은 이른바 ‘대(對)도시(counter-value)’ 전력이다. 1990년 대 이후 북한이 툭 하면 ‘서울 불바다’를 운운하며 협박할 수 있었던 것도 장사정포 때문이었다. 정상적 국가라면 민간 밀집 지역을 피하고, 군사 시설 등을 타격하는 대(對)병력(counter-force) 수단에 집중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군사회담을 통해 장사정포를 폐기하거나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최소한 30㎞ 이상 후방으로 이동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4·27 판문점 선언의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와 전쟁 위험 실질적 해소’에 조금이라도 부합한다. 장사정포가 수도권 전역을 겨누고 있는 한 남북 평화 논의는 공허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방어종심이 짧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평화협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집트가 시나이반도에 화력을 배치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현재까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장사정포 후방 이동은 조건 없이 이뤄져야지, 한·미 포병 전력과 연계해선 안 된다.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핵심 대화력 전력인 미군 제210화력여단 철수와 교환해선 안 된다. 장사정포 문제는 일반 무기가 아닌 민간 대량파괴무기 차원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