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성복 성신여대 조소과 교수가 서울 중랑아트센터 전시장에서 ‘꿈수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에 도깨비 얼굴의 석상인 ‘신화’가 놓여 있고, 바로 옆의 작은 조형물들은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는 타이틀의 조형물들이다.

- 도깨비 모티브 전시회 김성복 성신여대 교수

“우리조상 전통적 예술 해학미
작품에 담으려다 도깨비 탄생
요즘 젊은이들 위로하려고
쓰러지지않는 꿈수저 만들어”

나뭇조각에 새긴‘도깨비의 꿈’
5세부터 80代까지 소망 담아
해태상 희화한 석상도 전시

“금 나와라 뚝딱!!”

우리 전래 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다. 눈이 하나 달리고 머리에 뿔까지 난 도깨비지만 그가 휘두르는 울퉁불퉁한 방망이 하나만 있다면 세상에 이뤄내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조각가인 김성복 성신여대 미대 조소과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도깨비 작업에 매달렸고, 여러 차례 전시를 열었다. 그래서 화단에서는 ‘도깨비 작가’로 통한다.

“10년 전 도쿄(東京)예술대 방문 교수로 일본에 있을 때 우연히 일본 도깨비의 날 전통문화 축제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전통설화 속 도깨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도깨비와 도깨비방망이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도깨비를 주제로 한 김 교수의 전시회가 ‘욕망의 귀환’이라는 타이틀로 서울 중랑구 망우로 중랑아트센터에서 7월 1일까지 열린다.

전시에는 도깨비방망이를 모티브로 한 대형 스테인리스 숟가락 ‘꿈수저’와 5세 어린이부터 8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꿈을 1200여 개의 나뭇조각으로 옮긴 ‘도깨비의 꿈’ 등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꿈수저는 흔들어도 본래 형태를 잃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선다.

그 외에도 금강역사상과 만화 주인공 아톰을 결합한 조각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시리즈와 해태상을 도깨비처럼 희화한 석상 ‘신화’ 등이 놓여 있다.

김 교수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예술 작품에 존재하는 해학미를 작품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도깨비가 탄생했다”며 “도깨비는 일상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원래 두주불사형 작가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 도깨비 때문이다.

“대학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술을 엄청 마셨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체력이 약해지면서 술을 마셔서 얻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술 취한 삶보다 깨어 있는 맑은 삶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1200여 개의 나뭇조각 작품인 ‘도깨비의 꿈’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끊었습니다.”

최근 2년여 전부터 김 교수는 도깨비방망이를 모티브로 한 대형 스테인리스 수저도 만들고 있다. 일명 ‘꿈수저’다.

“꿈수저 작품은 요즘 젊은이들의 아픔을 위로해주기 위해 제작한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고통과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빈부 격차의 심화로 인해 만들어진 금수저와 흙수저 같은 자조적인 단어들의 등장을 접하면서 예술가로서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꿈수저입니다.”

김 교수의 ‘꿈’은 조금 황당하지만 ‘도깨비뱅크’의 총재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전시에서는 나무로 만든 5만 원 지폐 뭉치에 한국은행이라는 영문 대신, 도깨비뱅크에서 돈을 찍어냈다는 의미로 ‘DOKKAEBI’라는 영문을 쓴 작품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예술가는 꿈을 꾸는 몽상가이기도 합니다. 작업을 구상하면서 도깨비뱅크를 만드는 꿈을 꾸었습니다. 도깨비뱅크에서 도깨비방망이를 통해 끊임없이 돈을 만들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상상을 했습니다. 그 돈이 그분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충남 서산이 고향인 김 교수는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도깨비라는 전통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소재 때문인지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로 통하며 특히 꿈수저 조각작품의 경우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중랑아트센터의 박소현 관장은 “두드리면 주르르 금을 쏟아내는 도깨비방망이는 현실 세계에 꿈과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며 “역경을 익살로 넘겨왔던 삶의 지혜가 작품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