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 따라 채택된 ‘6·12 싱가포르 합의문’은 양측의 새로운 관계 수립을 약속했다. 6·25전쟁 후 약 70년 동안 유지돼 온 서로 간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정상적인 국가 관계를 향해 나간다는 두 정상의 합의가 나온 것이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이 거론되지 않아 아직 낙관적으로만 전망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날 합의문에서 “미국과 북한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 국민의 바람에 따라 새로운 미·북 관계를 건설하는 데 헌신키로 했으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 노력에 동참키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새로운 미·북 관계’란 6·25전쟁 이후 서로를 적대적으로 대해 온 과거의 관계를 청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미·북 양측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프로세스를 북핵 6자 회담 결렬 후 약 10년 만에 재가동하고, 6·25전쟁 발발 이후 68년간 이어온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중대한 일보를 내디디게 됐다. 또 이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따라 미국에 요구해 온 보상안인 ‘체제 안전 보장’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조치를 합의문에 적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비핵화에 관한 협상이나 대화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미국 측이 이번에 ‘적대관계 청산’이란 외교적 선물을 북한에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문 서명식에서 김 위원장을 워싱턴의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느냐는 물음에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라며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우리는 여러 번 만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이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을 내딛고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합의 내용을 합의문에 적시했지만, 일각에서는 낙관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이번 합의로 당분간 북한이 도발 행위를 하지 않고 협상에 임해 갈 가능성은 높아졌다”면서도 “이번 합의문으로는 앞으로의 (비핵화) 상황을 진전시키는 데에 의미 있는 수순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기만은 어렵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박준희 기자 vin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