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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슈퍼마켓 주인 / 쉐르민 야사르 글, 메르트 투겐 그림, 오은경 옮김 / 스콜라

예전에는 어린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가정교육’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의 생활과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집안의 양육자만이 아니다. 어린이는 수많은 사회적 양육자와 더불어 자란다. 어린이는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수많은 디지털 연결망 속에서 다양한 어른의 모습을 똑똑히 본다. 어른이라면 어린이가 은연중에 닮게 되는 사람 속에 내 모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삶의 자세를 돌아보며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는 아이가 없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내 꿈은 슈퍼마켓 주인’은 사업가를 꿈꾸는 한 여자 어린이의 성장서사다. 주인공 쉐르민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아주 작은 슈퍼마켓에서 일을 돕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장래희망을 생각해보았지만 원하는 걸 먹을 수 있고 쉬고 싶으면 가게 문을 닫을 수 있으며 사람이 북적여서 심심하지 않은 슈퍼마켓 주인이야말로 가장 멋진 직업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손녀 쉐르민을 순순히 받아주고 그때부터 야망가 쉐르민의 슈퍼마켓 경영 개선 작업이 시작된다.

늘 어른에게만 권리가 주어지는 것에 의문을 품던 쉐르민은 직원의 지위를 이용해 해볼 수 있는 모든 개혁을 감행한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초콜릿 크림병 뚜껑을 열어서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적어두면 손님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개봉한 제품을 판다는 항의와 대량 반품 사태를 겪는다. 형편이 어려운 무스타파 아저씨가 자존심 상하지 않고 음식을 더 받아갈 수 있도록 기부 프로젝트를 구상하지만 벽에 부닥친다. 효율성을 높이려고 포장 방식을 바꾸고 인기 제품을 본뜬 새 제품을 기획해보기도 하지만 거듭 실패한다. 하지만 쉐르민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슈퍼마켓에서 20년을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삶의 단면들을 두루 관찰하며, 슈퍼마켓 주인은 아니지만 좋은 어른이 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담이기도 한 쉐르민의 이야기는 1인칭이다. 쉐르민은 슈퍼마켓에서 만난 어른들의 면면을 예리하게 기술하고 거침없이 비판한다. 자립하려는 쉐르민을 끝까지 이해하고 지켜봐 주는 할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교육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터키 작가의 동화다. 왜 그동안 이런 걸작을 읽지 못했을까. 영미권 중심으로 편중된 어린이 문학의 반경이 더 넓어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