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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탄핵 정국의 와중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 대한 장밋빛 시나리오가 쏟아지면서 남북한 간의 경제 교류에 대해서도 성급한 전망들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나 경제 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튼튼한 국방력과 내실 있는 경제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통독을 이룬 배경에 미국·독일 간의 안보동맹과 서독의 경제력이 바탕이 됐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쌓아 올리고 있는 안보 면에서의 소기의 성과에 비해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일자리 창출을 내세운 경제 정책의 성과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두 차례 판문점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큰 이슈에 묻혀 있지만, 민생경제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왜 이러한 상황이 초래됐을까? 그것은 민생경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제 문제는 상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규제의 장벽을 치고, 소득 분배를 개선한다는 미명 아래 제로섬게임에 집착하는 인기 영합적인 경제 정책들을 남발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2017년 중 전 산업의 명목임금 증가율(3.58%)과 실질임금 증가율(1.68%)이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증가율(0.28%)을 훨씬 웃돌았다. 같은 기간에 제조업의 명목임금 증가율(4.57%)과 실질임금 증가율(2.66%)도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증가율(1.86%)을 더 빠른 속도로 추월하고 있다. 이는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표방하기 전 한국 경제는 10년이 넘게 ‘임금주도성장’을 경험했음을 의미한다. 콘퍼런스보드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노동생산성지표의 감소 폭은 싱가포르, 대만, 네덜란드 및 독일보다 훨씬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이 표류하기 시작한 단초는 공공부문에 집중된 일자리 창출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공공부문은 그동안 워낙 방만하게 운영돼 왔기 때문에 민간부문보다 생산성이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왔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창출돼야 하는 부문이 아니라, 반 이상 줄여야 하는 구조개혁의 대상이다. 일자리 창출이 이러한 부문에 영속적인 정부 예산의 증대로 귀결된다는 비합리적 기대가 형성됨으로써 ‘민간부문의 일자리’를 ‘구축(crowd-out)’시키는 효과를 낳고 말았다.

문 정부는 소득 분배를 개선하려는 선량한 의도에서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시도했다. 그러나 어떠한 경제 정책이든 정상적 속도와 궤도에서 벗어날 때 시장은 왜곡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자영업자들은 안 그래도 낮은 생산성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고용을 줄이거나 자영 고용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많은 근로자로부터 초과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고용을 더욱 줄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국,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민간 소비 증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17년 만에 가장 높은 실업률을 창출하는 정책으로 전락했다. 다만,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수속해 나가고 한국GM 사태를 수습하는 등의 과정은 그나마 선방한 경제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 정부는 출범 1년을 맞아 소득(所得)주도성장 정책에서 투자(投資)주도성장 정책으로의 대폭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