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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는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노비 관련 두 개의 악법, 즉 (노비의) 주인고소금지법과 노비종모법을 세종이 주도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중에서 이 교수가 중시하는 것은 후자(종모법)이다. 주인고소금지법은 노비의 권리에 관련된 것이지만, 그 자체로 ‘노비 폭증’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은 1432년 3월 15일에 부왕 태종 때 제정된 종부법 개정을 제안했다. ‘여자 노비가 자주 남편을 바꾸어 양민과 천민을 뒤섞기(混淆·혼효) 때문에 그 자식이 태어났을 때 어느 남편의 소생인지 애매(曖昧)하여 구분하기 힘들고(難明·난명) 자기 아비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패륜까지 발생한다’는 게 세종의 상황인식이었다. 세종은 이날 태종 때 만들어진 종부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륜의 바른 길(人倫之正道)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각기 충분히 의논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를 들은 맹사성 등은 의논 끝에 종부법의 폐지를 요청했다. 낳은 자식의 신분을 남편 쪽에 따르게 하는 법(종부법) 때문에 여자 노비가 천인의 자식을 잉태했을 때 다시 양인 남자와 관계하여 자식을 양인으로 바꾸려 하는 폐단이 있으니, 종모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종은 관계되는 바가 중하니 다시 깊이 헤아려 보겠다고 대답했다.

이날의 종모법 논의와 관련해 이 교수는 ‘이 법은 원래 발의자 세종이 토로한 대로 비(婢·여종)는 성적으로 문란한 금수(禽獸)와 같아서 그 소생의 부계(父系)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다(위의 책, 63쪽). 그러나 세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세종이 하지도 않은 말을 애매(曖昧)하게 갖다 붙이고 실록 속의 발언자를 뒤섞어(混淆)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難明). (‘금수’라는 표현은 세종이 아닌 맹사성의 말 속에 나온다.) 이 교수는 자기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세종이 ‘자진하여’ 이 법을 냈고, 신하들에게 “그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실록을 보면, 세종은 이 제안이 나오기 8년 전부터 신하들과 여러 차례 종부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허조를 비롯해 맹사성, 김효손 등이 종부법의 인륜파괴 문제를 제기하며 개정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세종이 종모법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던 사건이 있었다. 종모법 논의 2년 전인 1430년 10월의 ‘고미사건’이 그 예다. 여종 이고미는 천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아버지의 뺨을 때리고 욕을 하는 등 패륜 행위를 했다. 부모와 자식 사이를, 부부간의 관계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법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교수의 결정적인 사실 왜곡은 그다음, 바로 양천 교혼 관련 주장에 있다. 세종이 양반들의 재산을 늘려주기 위해 종모법을 입법했고, 천인 여자와 양인 남자 사이의 혼인을 허용 내지 장려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양천교혼이 무한정 용인됐으며, 그것이 노비 인구의 대확장’으로 이어졌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그런데 실록 어디에도 세종이 양천교혼을 허용한 법률이나 대목이 없다. 반대로 종모법을 제정하면서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자 종과 양민의 결혼을 엄하게 금지하는 조처와 지시를 자주 내리고 있다(1432년 3월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수는 어떤 근거 제시도 없이 ‘세종이 제정한 종모법이 양천금혼의 빗장을 풀어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위의 책, 64쪽). 이 교수가 이처럼 종모법을 강조하면서 양천교혼 허용 내지 권장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야만 ‘15세기 노비인구 대확장’의 원인이 세종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천교혼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