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체제보장’ 따른 ‘南 부담’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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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영 서강대 교수 국제정치학

지난 24일 미·북 정상회담 계획이 전격 취소되고,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일각에서 깜짝 2차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 판문점 통일각에서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실무협상이 개최됐다. 싱가포르에서도 미·북 실무협상이 개최됨으로써 롤러코스터처럼 급격한 정세 변화 59시간을 지나면서 미·북 정상회담의 불씨가 살아났다.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의 핵심 이익을 정리하고,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북한과의 회담을 위한 조건이자 최종 입장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원칙이다. 북한의 완전 비핵화란, 영변의 핵단지를 포함하는 고농축우라늄(HEU) 공장 등 제반 의심 시설을 자진 신고하되 미국 등의 무제한 사찰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이후 북한 내 핵탄두 일체를 국외로 반출하는 문제가 타결돼야 한다. 미국은 CVID의 담보 방식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되, 대신 북한은 향후 비핵화 내용과 절차에 대한 신속한 이행과 투명하고 실효성 있는 핵 사찰을 보장해야 한다.

북한은 비핵화 이행의 반대급부로 미국이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체제 안전을 확실히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경제적 지원 요구로도 귀결된다. 이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빈번히 이용해온 벼랑끝 협상 전략을 시도하려고 김계관과 최선희를 앞세운 대미(對美)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스스로 즐겨왔던 벼랑끝 협상 전략 때문에 역설적으로 스스로의 입지가 취약해지는 수모를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북 정상회담 돌연 취소 조치는 북한에 대한 부메랑 효과였고, 북한의 입지는 더욱 옹색해졌다. 과거 미국 등과 핵 폐기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찰 과정에서 보였던 각종 부정적인 행태들과 인식을 불식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바탕으로 미·북 정상회담 개최 약속까지 이끌어내는 공(功)을 세웠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회담을 통한 한반도 종전 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 후 ‘디테일의 악마’를 명확하게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북한의 비핵화 방식 문제다. 문 정부는 상이한 입장을 보이는 미·북 양자를 동시에 절충시킬 수 있는 복안을 제시해야 진정한 운전자가 될 수 있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대북(對北) 체제 보장 및 경제 지원의 형식과 진행 문제다. 경제 지원과 관련해 누가 얼마나 부담해야 할 것인지는 미·북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곧 우리가 직면할 엄청난 쓰나미다. 셋째, 북한의 체제 보장을 위해서 한국은 미국과 무엇을 교환해야 하는지를 계산해야 한다. 미·북 회담에서 미국의 핵심 이익이 관철되면, 부차적 문제는 고스란히 우리의 부담으로 넘어온다.

이제 협상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문 정부의 운전자론은 ‘디테일의 악마’가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미·북 간 어떤 가교 역할을 할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국제관계는 힘을 바탕으로 냉정한 계산이 통용되는 세계다. 이제 북한의 CVID 문제는 차갑지만 슬기로운 선택과 결정을 요구한다. 한·미 간 긴밀한 공조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필수 요소임을 잠시도 잊어선 안 된다. 더더욱, ‘우리민족끼리’라는 감성적 논리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접근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다음 세대에 해결하기 어려운 부담을 떠넘겨선 안 된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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