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롤러코스터 타기와 같은 극단을 오가는 외교전이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포기→재시도’ 말바꾸기는 그 자체로 문제가 적지 않지만, 이 과정을 통해 북한의 애매한 ‘단계적 비핵화’가 미국 방식의 신속한 ‘완전 비핵화(CVID)’라는 총론에 근접한 것으로 보여 그 결과는 나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회담 취소를 선언하자, 김계관 북 외무성 제1 부상은 김정은 위임을 전제로 ‘트럼프 방식’을 언급하며 회담 성사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남북 판문점 2차 정상회담에서도 완전한 비핵화 방침이 거듭 확인됐다.

이런 상황 변화에 따라 여러 채널로 재개된 미·북 실무협상은 앞으로 2주일 동안 CVID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행할 것인지를 놓고 막바지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성 김 주(駐)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 의제 등에 대한 첫 실무협상을 가졌고, 싱가포르에서도 의전 등을 둘러싸고 28일 첫 협상이 진행된다. 그러나 CVID 총론에 접근했다고 해서 낙관하기는 어렵다. 북핵 회담에 관한 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이 적확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최근의 롤러코스터 상황은 비핵화 실무 협상 및 ‘이행 보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줄 뿐이다.

비핵화에 대한 총론 합의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나 2005년 9·19 공동성명은 모두 검증과 사찰 단계에서 깨졌다. CVID의 핵심, 즉 북한 완전 비핵화의 핵심은 영변의 핵단지 및 고농축우라늄(HEU) 공장 등 의심시설에 대한 북한의 신고 및 미국 등의 무제한 사찰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일이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때도 전문가 초청 약속을 어기고 언론인들만 초청해 폭파 쇼를 벌인 바 있는데 앞으로 진행될 핵 폐기가 이런 방식으로 되어선 안 된다. 무제한 사찰이 보장되지 않는 합의는 결국 과거의 패턴을 되풀이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