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본 모노가타리에 자주 등장하는 전설의 귀신. 머리에 뿔이 있고 등에는 도롱이(비옷)를 메고 있다. 북스피어 제공

- 삼귀(三鬼) /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日추리소설 작가 미야베 신작
에도시대 배경의 전설 이야기

도시락가게 주인에 붙은 아귀
사람들 돕던 산속귀신 사연…
흥미진진 미스터리에 유머도

일본엔 우리의 전래동화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고전문학이 있다. 바로 모노가타리(物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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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가타리에서 ‘모노(物)’는 불특정 사물이나 사실을 총괄적으로 부르는 말이고, ‘가타리(語)’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즉, 누군가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책은 일본에서 ‘화차’ ‘모방범’ 등 추리소설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모노가타리다. 막부(幕府)의 쇼군(將軍)이 지배하던 에도(江戶) 시대를 배경으로 미시마야(三島屋)라는 한 주머니 가게에서 전해진 기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도 시대는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시작으로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전까지 이어진 약 250년간의 봉건시대다. 그때는 지방의 영주가 곧 법이고 도덕이었다. 철저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지배층은 피지배층에게 무한한 권력을 휘둘렀다. 영주로서 사람 목숨 하나쯤 어찌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따라서 영주를 제외한 무사, 농민, 상인 등 피지배층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사적 연대의식이 강했다. 모노가타리는 그런 연대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영주와 무사의 의리와 배신, 신과 귀신에 관한 미스터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졌다.

미야베가 주목한 것도 모노가타리 속의 괴담과 미스터리다. 그는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고, 또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에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몇 가지 시리즈를 펴냈다. 비범한 능력을 갖춘 오하쓰와 현명한 청년 우쿄노스케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미소녀 시리즈’, 만사 느긋한 헤이시로와 어리지만 총명한 유미노스케가 콤비로 활약하는 ‘미소년 시리즈’, 그리고 가슴 속에 상처를 간직한 채 손님들의 이야기 상대가 돼 주는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 등이다.

이 중에서도 책은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 안에 있다. ‘흑백’ ‘안주’ ‘피리술사’에 이은 네 번째 작품이다.

‘미망의 여관’ ‘식객 히다루가미’ ‘삼귀’ ‘오쿠라 님’ 등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미시마야의 소녀 오치카가 가게를 방문하는 다양한 손님들의 기이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식객 히다루가미’는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도시락 가게의 주인에게 달라붙은 아귀(餓鬼)에 관한 이야기다. 가게 주인이 먼 길을 다녀오다가 산중에서 아귀에 사로잡히는데 이 때문에 괴롭고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깨닫게 되는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섬뜩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서술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가 적극 추천하고 있다.

표제작 ‘삼귀’는 고립된 산간마을 사람들의 곁에서 그들의 일을 대신해주던 산속 귀신에 관한 애절한 이야기다. 누이동생을 겁탈한 상류층 자제에게 복수했다가 산지기로 유배된 무사 세이자에몬은 산간마을에 오래도록 전해온 죽음의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귀신을 다룬 괴담이지만 서양의 공포영화처럼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한 자극은 지양한다. 그보다는 귀신의 성격과 사연에 따라 펼쳐지는 미스터리가 흥미진진하다.

모노가타리는 일본의 작가라면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라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모리 오가이(森鷗外)도 ‘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를 썼을 정도다. 현대 작가 중에는 교고쿠 나쓰히코(京極夏彦)가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에도 시대부터 괴담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풍습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미야베는 2000년 ‘미시마야 시리즈’의 첫 번째인 ‘흑백’을 발표할 때 한 권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소녀’ 오치카를 내세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그는 “햐쿠모노가타리니까 100화까지 쓰겠다. 100화를 쓰기 전에 죽는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후반 작업은 결국 수명과의 전쟁이 될 것 같다”며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658쪽, 1만68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