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민화 KCERN 이사장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추격자 전략 시대의 핵심 역량
이젠 도약 막는 걸림돌로 돌변
민간·시장 주도로 신속히 가야

기업가 정신과 혁신 안전망 중요
新산업 분야 고전은 규제 때문
스마트 정부의 규제 개혁 절실

대한민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국가로 도약한 자랑스러운 1차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 교수가 극찬한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OECD 바닥권으로 추락하고, 청년들은 안전한 공무원으로 몰려가고 있다. 주력 산업은 부진하고 신(新)산업은 중국에 뒤지고 있다. 양극화로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고, 국가관 부재로 개인주의는 심해지고 있다. 지식인들은 냉소주의로 돌아서고 국민의 자부심은 위축되고 있다. 2차 한강의 기적을 재현하기 위한 국가 비전이 필요한 이유다.

1차 한강의 기적은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선진국을 따라잡는 효율로 달성됐다. 국가는 산업과 기업을 선택해 지원과 규제를 하고, 대기업은 갑을 문화로 중소기업을 이끌고 수출 입국(輸出立國)에 매진했다. 학교는 정답 위주의 교육으로, 반복되는 일을 잘하는 스펙형 인재를 양성했다.

그런데 추격자 전략의 성공에 함몰된 대한민국은 이제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과거 추격 전략의 핵심 역량들이 탈(脫)추격 또는 선도 전략에서는 핵심 걸림돌로 돌변했다. 과거 성공이 이제 미래 실패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효율 중심의 추격 전략으로는 일류 국가 부상(浮上)은 불가능하다. 이제 창조적 도전을 뒷받침할 기업가정신에 기반한 혁신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를 발굴하는 역량이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보다 중요해졌다. 스펙형 인재보다 창조형 인재인 ‘협력하는 괴짜’가 요구된다.

과거 추격 시대에는 국가가 구체적 산업 목표를 정하고, 집중적 지원과 세세한 규제를 하는 국가 후견주의로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정부가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한 정책은 대부분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특정 산업을 키우는 정책에서 산업 인프라 정책으로 대전환을 해야 하는데, 단기 실적주의가 이를 완강히 가로막고 있다. 정부 후견주의에서 시장 중심의 민간주도로 가야 하는데 인프라 구축의 성과는 단기간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가정신 확산과 더불어 혁신의 안전망과 혁신 자본 시장을 구축하면 미래 먹거리는 벤처와 대기업이 만들어낼 것이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작은 스마트 정부로 가는 규제 개혁 정책을 지향하면 된다.

추격 전략에서 확립된 사전 규제와 실패에 대한 과도한 징벌은 탈추격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탈추격 전략은 불확실한 목표에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혁신 전략이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실패를 안고 있다. 실패를 응징하면 혁신도 사라진다. 정직한 혁신을 지원하는 안전망이 핵심 탈추격 국가전략이다. 사전 규제에서 사후 평가로, 간판에서 평판으로, 실패의 징벌에서 실패의 지원으로 바꾸자. 가장 중요한 기업가정신을 가로막는 원인이 배임죄 등 잘못된 무한책임 주식회사 때문이다. 창업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은 신용불량의 공포다. 창업의 성공 기댓값은 키우고 실패 징벌은 줄여야 한다.

드론,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핀테크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중국에 뒤진 건 기술이 아니라 규제 때문이다. 원칙 금지의 포지티브에서 원칙 허용의 네거티브로 규제의 패러다임을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국가 경쟁력 하락의 주범은 10위권의 기술이 아니라 60위권의 규제다. 특히, 데이터 쇄국주의가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다.

치열한 레드오션 추격 경쟁의 폐쇄성은 이제 탈추격 블루오션의 걸림돌이다. 탈추격의 선도 전략은 더불어 가는 전략이다. 복합적 문제를 더불어 해결하는 개방 협력이 너무 부족하다. 정부 부처에서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닫힌 사일로(Silo)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오픈 소스와 공유 경제는 선도 국가의 필수 사항이다. 특히, 대기업과 벤처의 선순환을 이룩하는 상생형 인수·합병(M&A)과 개방 플랫폼의 부족은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공정 거래와 수평 기업 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혁신의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1차 한강의 기적에 도전한 1960년대보다 전체 상황은 나쁘지 않다. 현재와 과거가 싸우면 미래가 다친다. 4차 산업혁명을 새로운 기회로 활용해 보자.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역사에 기반한 미래 비전으로 공유 가치를 형성하자. 될 것인지 묻지 말고, 되려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