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고(故) 구본무 LG 회장은 끈기와 뚝심으로 글로벌 기업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전 회장과 부친 구자경(93) 명예회장에 이어 LG그룹의 ‘3세대 총수직’을 23년간 맡으면서 LG전자와 LG화학 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1945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난 구 회장은 연세대를 거쳐 미국 애슐랜드대학교를 졸업하고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LG화학 심사 과장으로 입사해 유지총괄본부장을 거쳐 1980년 LG전자 기획심사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5년 이후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전무와 부사장의 직책을 맡아 그룹경영 흐름을 익히는 기회를 가졌고,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수업을 본격화했다.

입사 20년만인 1995년 그룹의 회장직을 승계받았다. 부친인 구자경 회장보다는 5년 늦은 50세에 그룹경영을 맡았지만 전 회장이 건강한 상태에서 승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게 재계의 평가였다.

고인은 회장 취임 이후에는‘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등을 경영이념으로 삼았다. 또 20여 년 동안 화학·전자·통신·디스플레이 등 현재 LG그룹의 주력사업을 토대로 닦았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GS, LS, LIG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LG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LG의 매출은 1994년 30조 원에서 2017년 160조원으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 원에서 110조 원으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1995년 1월 LG CI 선포식을 마친 뒤 당시 구자경 회장(왼쪽 세 번째)과 구본무 부회장(왼쪽 첫 번째)이LG트윈타워 표지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문화를 과감하게 바꿔 놓은 것도 고인의 역할이 컸다. LG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한 것은 구 회장의 결단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순환·상호출자 고리를 해소한 후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수직적 출자구조로 지배구조를 바꿨다.

그룹 관계자는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용기 있고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해 결실을 보는 구 회장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병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미래 성장 동력을 육성하는데 집중했다. 4조 원을 투자해 서울 강서구 마곡에 그룹 연구·개발(R&D) 집결체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했다.

개인적으로는 외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외아들을 회장 취임 직전인 1994년에 사고로 잃은 뒤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2004년 바로 아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씨를 양자로 들였다.

평소 소탈하고 탈 권위적인 성품으로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1년에 몇 차례 직접 경기장을 찾아 LG트윈스 팬들 사이에서는 ‘구느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탐조활동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