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북웨이’로 변신한 민원실 통로 쪽 복도의 다락 공간에서 청소년들이 책을 읽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성동 책마루

13m 書架… 책의 신전 보는듯
7개 방에선 주민들 열띤 토론
계단마당선 간간이 공연·강연

1월 개관… 복합문화공간으로
지금은 하루 1000명 찾는 명소

얼마 전에 강남의 대기업 사옥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마어마한 크기의 번쩍이는 로비에 살짝 주눅이 들었다. 이 웅장한 로비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일상적인 일조차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커피도 마시지 못하는 로비가 왜 이리 크고 화려할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 사옥들은 크고 웅장한 로비가 있다. 말끔한 차림으로 로비에서의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보안요원들을 보면 로비는 기능적이기보다는 기업의 위세를 과시하는 권위적인 공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기업사옥뿐만 아니다. 권위를 내세우는 데 익숙한 우리나라의 관공서 건물에서도 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로비에 연결된 계단도 필요 이상으로 넓고 크다. 1층 전체를 로비로 쓰는 경우 5층 건물의 5분의 1이 별 기능도 없는 공간으로 낭비되고 있다. 물론 상업건물에서 임대공간을 많이 만들기 위한 좁고 낮은 로비보다는 보기도 좋고 느낌도 좋지만 보고 느끼는 것 이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성동 책마루’는 1층 로비 전체를 열린 도서관으로 바꾼 사례다. 2018년 1월에 개장한 성동 책마루는 썰렁하고 별 기능이 없었던 성동구청의 로비를 책과 휴게시설로 채운,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성동 책마루는 7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는데 민원실로 들어가는 높은 천장의 복도는 다락이 있는 ‘북웨이’가 됐고 엘리베이터 홀 주변은 서가로 둘러싸인 ‘북 카페’가 됐다. 북 카페 주위로 넓은 창을 기대고 있는 ‘클라우드 서가’는 커피 한잔과 어울리는 최신 잡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서가 높이 13.5m의 위용을 자랑하는 ‘무지개 아카이브’는 책의 신전을 보는 듯하다. 무지개색을 담은 7개의 방으로 구성된 ‘무지개 라운지’에는 책상을 마주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주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조용히 하지 않아도 된다. 계단으로 꾸며진 ‘계단마당’에서는 간간이 소규모의 강연이나 공연이 벌어진다. 그래서 성동 책마루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책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주민들은 이곳의 서가에서 책을 마음껏 꺼내 볼 수 있지만 대출은 되지 않는다. 책의 대출을 원하는 사람들은 3층까지 연결된 빨간 목재계단인 ‘무지개 도서관계단’을 따라 올라가 책의 대출이 가능한 3층 도서실을 이용하면 된다.

이미지 크게보기 공간 전체가 도서관으로 바뀐 성동구청 청사 1층 로비 입구. 김선규 기자 ufokim@

계단을 오르면서 내려다보이는 무지개 아카이브의 미디어 파사드가 장관이다. 성동 책마루는 구청의 1층 로비를 알뜰하게 활용한 덕에 1층에 있는 민원여권과나 교통행정과가 성동 책마루 안에 들어와 있다. 심지어는 긴급한 일이 일어났을 때 구청 전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엄중한 공간인 종합상황실도 성동 책마루의 한 코너인 양 서가에 덮인 채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관공서 건물에서 봐왔던 쓸모없는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여기저기에서 자유롭게 책을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구청의 로비를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내놓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월 개관 이후로 하루 평균 1000여 명이 찾아오는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쓰타야 서점’은 책과 함께 문화를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요리책이 꽂혀있는 서가 옆에는 요리재료나 요리도구가 함께 판매되고 있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커피를 파는 곳이 매장 안에 있어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심지어 쓰타야 서점 본점에는 수준 있는 레스토랑까지 갖추고 있어 서점인지 음식점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쓰타야 서점의 변신에는 사람이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편의성을 제공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성동 책마루의 중심에도 사람이 있다. 주민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 실천에 옮긴 것이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대기업 사옥을 나서면서 우리나라의 대기업이 사람들에게 더 사랑받는 길이 어쩌면 매우 쉬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제품으로 유명한 기업의 로비에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상현실 게임장(VR)이, 식품으로 유명한 기업의 로비에는 음식의 재료와 함께 조리방법을 알려주는 공간이 있다면 그 기업에 대한 친근함도 느껴지고 매출도 함께 늘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