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폐기’ 전문가 분석·지적

“과거 6차례 핵실험 증거 보전
토양잔류성분 등 조사 막는것”

“북한의 정교하게 계산된 행보
‘美보상 이후 검증’ 의지 피력”

북한이 오는 23∼25일 중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의식’을 실시한다고 공언했지만, 이번 폐기를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의지로 연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비핵화 핵심 중 하나가 ‘검증이 가능한 폐쇄’라는 점에서 핵실험장 폐기 과정에 대한 전문가의 실사가 선행돼야 북한이 ‘미래의 핵’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핵’도 포기를 선언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사찰과 검증에 보다 주안점을 두는 비핵화 로드맵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14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의미는 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며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성의를 표시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제대로 폐기하려면 사찰을 받고 하는 게 더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핵실험장 폐쇄는 전체 비핵화 과정의 1%도 안 되는 일이고 CBM(Confidence Building Measure·신뢰구축방안) 정도의 조치”라며 “핵실험장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를 못 하게 막는 것이니 좋다고 평가할 일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기보다는 해당 현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실사나 사찰이 우선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성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만들어서 사용했는지 북한 당국이 정확히 신고해야 한다”며 “신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국제 사찰단의 현장실사와 조사가 다 끝난 다음에 폐기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천 전 수석은 “지금 중요한 건 6차례에 걸친 북한 핵실험의 증거를 보전하는 것이고 풍계리 핵실험장에는 북한이 과거에 실시한 핵실험과 관련된 정보가 상당할 것”이라며 “현장에 남아 있는 핵물질 종류, 토양에 잔류한 성분 등을 다 조사해야 하지만, (이번 폐기로) 조사를 못 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기가 곧바로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의지와 직결되는 조치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정교하게 계산된 행보를 하고 있다”며 “미·북 대화를 앞두고 미국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사찰이나 검증은 미국과 타협이 이뤄진 후, 보상이 이뤄진 후에야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천 전 수석은 “북한은 이미 작년에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고, 그건 더 이상 핵실험이 필요 없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핵실험을 더 할 필요가 있는데 안 하겠다고 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전 비서관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증거인멸, 증거훼손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고, 그러면 북한의 핵 포기 의지가 안 드러나는 것”이라며 “오히려 국제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사찰·검증을 배제한 채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것과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향후 비핵화 로드맵에서는 사찰과 검증의 장치가 강화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난 12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예고하자 백악관 측은 “폐기 계획을 환영한다”면서도 “국제 전문가들에 의해 사찰 및 충분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폐쇄가 북한 비핵화에 있어 핵심조치”라고 강조했다. 천 전 수석은 “풍계리 폭파쇼는 가치를 부여할 일이 아니다”며 “중요한 건 핵물질을 생산하는 시설들, 숨겨 놓은 우라늄농축시설을 확인하고 폐기하는 것이고, 이것이 전체 비핵화의 90%”라고 말했다.

박준희·김영주·김유진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