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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귀여운 김정은’의 등장, 남북관계의 진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는 상황이지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있다. 경제 얘기다. 세계적인 훈풍 속에 한국만 역주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1 공약이며 취임 후 제1 업무지시인 ‘일자리’는 1년간 뒷걸음쳤다.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두 개의 커다란 일자리 현황판은 5초마다 업데이트를 하는데 뭐 이렇다는 설명 없이 1년이 지나갔다. 추경을 11조 원이나 퍼부었지만, 실업률은 17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산업 생태계에서 ‘약자 대 약자’의 싸움을 불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경기선행지수는 9개월째 하락했다. 제3의 경제 위기가 불어닥칠 거라는 예측도 나온다.

경제학 원론에도 없던 소득주도성장 기치를 내걸고 국가 경제를 실험하듯 다뤄온 청와대 경제팀, 그리고 이들을 고용한 문 대통령의 책임이다.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을 경제팀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 전 만나 대화를 나눈 진보 진영의 야당 지도자는 기자에게 “지금 청와대 경제팀은 ‘양극화 해소팀’인데, 미래 가치나 혁신적 가치를 갖고 뭘 해보겠다는 게 없다”고 한탄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삼고초려로 모셔와 헌법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을 맡게 된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도 쓴소리를 했다. 김 교수는 기획재정부가 최근 그린북에서 ‘경제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자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믿고 싶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다.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이라고 썼다.

문 대통령도 경제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이다. 성장 동력 만들기와 지속 가능성을 중심에 두는 산업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도 당연히 있다고 본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문 대통령이 유독 경제 관련 대책회의 자리에서만큼은 종종 ‘짜증’을 낸다는데 이건 경제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경제팀들이 잇단 정상회담과 한반도 화해 흐름, 그리고 ‘김정은 현상’에 편승해 경제 역주행과 민생 실종에 대한 비판과 질책을 모면해보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일부 인사가 ‘귀여운 김정은’이라며 인스타에 해시태그 달고 ‘평양냉면 인증 샷’ 올리면 국정 지지율이 치솟고 김정은 호감도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뒤집히는 세상이니까 그럴 만도 하다.

올 연말 중간선거에 승리해 재선의 길을 굳히려는 도널드 트럼프, 부유한 싱가포르를 장기 통치했던 리콴유를 닮은 경제부국의 독재자가 되길 원하는 김정은, 두 사람은 이미 타협지점을 찾은 듯 보인다.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이 끝난 다음 날엔 당일 실시하는 지방선거 뉴스보다 두 정상의 ‘핵 폐기-체제 보장’ 담판을 둘러싼 화제가 전국을 뒤덮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평화가 찾아오고, 통일이 도둑처럼 임하고, 무자비한 34세의 청년 세습 독재자가 유머 감각 넘치는 친구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고 성공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거덜 난 경제를 가리는 면죄부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또한 간절하다. 그런데 지금은 ‘김정은 현상’이 경제 실정을 덮었다. 그게 걱정이다.

mi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