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변곡점에 직면한 한국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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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가 예사롭지 않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2년 집권 이후 처음으로 우한(武漢)의 반도체 기업을 찾아 ‘반도체 중국몽 (夢)’ 실현을 약속했다. 그 직후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진흥을 위해 3000억 위안(약 51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에 조성한 후 지금까지 70여 개의 반도체 프로젝트에 투자했던 1차 펀드 1390억 위안(약 24조 원)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시진핑이 방문한 반도체 회사는 올해 10월부터 낸드 플래시 양산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전자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기업이다.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60%를 소비하지만, 자급률은 14% 수준밖에 안 된다.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많은 2200억 달러(약 250조 원)에 이르는 반도체를 매년 수입하고 있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는 게 반도체 굴기의 목표다. 최근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 전자제품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반도체 국산화의 필요성을 배가시켰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 수준이 우리의 턱밑까지 따라왔고,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비롯해 오포, 비보, 샤오미, 레노버 등 중국 제조 기업들이 탄탄하게 수요를 받쳐 주고 있어 중국은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하기에 유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법인세를 5년간 감면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한국이나 대만 같은 해외에서 반도체 기술자를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출하는 것도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기본 기술이 되는 반도체부터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우리가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던 디스플레이 시장은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로 이미 ‘실적 쇼크’에 빠져 있다. LG 디스플레이는 올해 1분기 매출이 1년 전보다 20% 이상 줄어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1분기 영업이익이 68%나 줄어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공격적인 생산 물량 확대로 공급 과잉이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격적인 반도체 산업 투자가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은 디스플레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000억 달러(약 108조 원)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7.4%에 해당한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각각 45.0%와 28.1%로 국내 기업이 73.1%를 차지한다. 지난해 두 기업이 납부한 법인세만 11조 원으로, 이는 전체 법인세수의 18%에 해당한다. 반도체 산업이 삐끗하면 한국 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전략적 변곡점’이란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을 가리킨다. 인텔을 세계 1위의 반도체 회사로 성장시킨 앤드루 그로브 회장이 자주 사용한 개념이다. 전략적 변곡점을 제대로 관리하는 기업은 새로운 번영을 위한 제2의 도약을 꿈꿀 수 있지만, 이 시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과거의 성공을 기점으로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는 뜻이다. 자동차와 조선, 디스플레이 등 수출 한국을 견인해 온 산업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우(愚)를 반도체 시장에서 반복해선 안 된다. 반도체의 기술 유출을 막으면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해야만 전략적 변곡점을 극복할 수 있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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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변곡점에 직면한 한국 반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