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 보장’을 위해 설치된 법정(法定)기구로 방송사 재허가·승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런 권한을 가진 기구가 사실상 정부 발표에 대한 무비판적 보도를 원칙으로 삼으라는 식의 황당한 주문을 했다. 26일 발표한 ‘남북정상회담 취재보도 유의사항’에 ‘객관적 보도를 위해 국가기관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보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적시했다. ‘확인되지 않은 취재원의 발언과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추측 보도를 해서는 안 되며, 신원이 불분명한 제3자로부터 자료를 받거나 진위 확인이 불명확한 자료를 사용하는 행위도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민주주의 국가의 언론은 정상회담을 포함한 모든 사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보도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방통심의위(委)가 전두환 정권 때의 ‘보도지침’을 떠올리게 하는 ‘신(新)보도지침’을 내놓은 저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발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방송 내용에 대한 사후 심의와 제재’가 본연의 권한인데, 사전 조치까지 한 것이다. 지금을 독재시대로 여기지 않는다면, 취재와 보도 방식까지 지켜야 할 점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론의 중요한 존재 이유가 권력 감시이고, 정부 발표에 대한 검증인데, 이런 기본적 언론관조차 부정하는 셈이다. 어느 언론학자가 “국가가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받아쓰라는 지침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나올 수 있는 발상”이라고 지적한 것은 당연하다.

“심의에서 자주 지적된 부분을 중심으로 사전 안내를 한 것일 뿐”이라고 방통심의위는 둘러대지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대착오적 월권을 행사한 방통심의위원을 올바른 언론관을 가진 인사로 전면 교체 위촉해야 한다. 국회의장과 국회 상임위 추천도 다시 받아야 한다. 그것이 유사한 반(反)언론 사례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