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봄’ 이후… 동북亞, 외교안보 주도권 각축장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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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반목, 분열로 점철됐던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27 남북정상회담을 전환점으로 1953년 한국전 정전 이후 유지됐던 적대적 긴장 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조화·균형관계로 변모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실현이라는 최종 난제가 남아 있지만, 대화와 평화 분위기는 완연하다. 이에 따라 이념과 역사, 영토 문제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던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외교 안보 지형도 급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치열한 수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미국
亞太 주도권 유지 최대 과제
中의 영향력 확산 차단 주력

동북아시아 정세의 결정자 역할을 해온 미국은 한반도가 종전체제로 나아갈 경우 동북아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목표로 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가 성사되면 곧바로 북한 핵시설 사찰 및 폐기 단계로 가게 된다. 북한이 진정성 있는 핵폐기에 나설 경우 대북 제재는 해제될 것이고 미·북 수교까지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한·미 연합훈련 축소 중단을 시작으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유엔사령부 해체 논의도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전략적 최우선 사항은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위태로워지는 일을 차단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입장으로서는 종전체제보다는 정전체제가 동북아 주도권 유지에 용이하다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비핵화 조건으로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미국의 워싱턴 정계에서는 상황 진전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분위기다. 한국과 중국, 북한의 경제적 유대 관계가 강화되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 비핵화로 동북아 평화가 정착된다면 주일미군의 주둔 필요성이 낮아지게 되므로 미국으로선 이러한 상황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 중국
對北관계 강화·지분 늘리기
평화체제 역할 확대 나설 듯

중국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어질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밀착할 가능성을 잔뜩 경계하고 있다.

현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른바 ‘차이나 패싱’을 막으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발휘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 특히 지난달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회복된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해법인 ‘단계적·동시적 조치’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함께 평화체제 구축에 정전협정의 당사자로서 중국의 참여를 강력하게 촉구하는 ‘중국 역할론’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이다. 중국은 또 북한과 러시아와도 공동 보조를 맞추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맞선 중·북·러 3자 연대 구축에도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과 공조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적극 기울일 전망이다.

한석희 연세대 중국연구원 교수는 “중국은 남북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데 가장 긴장하고 있다”며 “정전협정 당사자 중 한 명으로 평화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최근 남북이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이 중국이 주장했던 대화·협상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자신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 일본
北과 정상회담 개최 서둘러
‘재팬패싱’서 국면전환 노려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일본은 그동안 수면 아래서 추진했던 북·일 정상회담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내각은 미국과 공조해 북한에 대한 압박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반도에 평화국면이 열린 만큼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보면서 빠르게 북한에 손을 내밀고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은 한국과 미국, 북한을 중심으로 진행된 외교전에서 주변부를 겉돌았던 일본으로서는 단숨에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북한을 중심으로 한 대화 국면 속에서 남북, 미·북 관계 개선의 속도가 빨라지고 평화 체제로 재편될 경우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에서 한반도 긴장 조성을 통해 반사이익을 누려왔다는 평가가 제기됐던 일본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동북아의 핵심 플레이어 자리를 노리는 일본은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 국면에 들어간 후에도 새로운 평화 체제에 편입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서는 새로운 평화 체제 속에서 기존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를 유지해 나가려고 분주하게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 러시아
약화된 입지 회복하기 시도
다자협력 빌미 美견제 전망

과거 6자회담 당사국으로 동북아 정세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러시아는 최근 몇 년간 한반도 내 영향력이 약화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외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동안 동북아 지역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지만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안보지형에서 객관적 중재자로 영향력 행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으로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에 대한 견제로 다자안보협력 체제 구축에 나설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동안 동북아 지역에서는 경쟁 또는 동맹의 양자 관계만 존재했는데 군사·비군사적 요소를 포괄한 다자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면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러시아는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지난해 7월 ‘3단계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먼저 북한 핵·미사일 시험 중단 및 비핵화 공약, 한·미 연합훈련 축소 또는 중단을 목표로 하고, 2단계로 미·북, 남북 간 직접 대화로 상호 관계를 정상화한 뒤 한반도 비핵화 다자협의를 통해 동북아 지역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 중단 선언으로 로드맵 1단계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박세희·박준우·정철순·김현아 기자 saysay@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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