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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 팬덤 / 조이 프라드블래너, 에런 M. 글레이저 지음, 윤영호 옮김 / 세종연구원

15세기 문맹여성 마저리 켐프
성경 토대로 한 ‘팬 픽션’ 창작

日 음성합성소프트웨어 ‘미쿠’
팬들끼리 창작물 만들고 공유

이익만을 위한 상품 구매 아닌
소통으로‘팬덤기반 경제’활동

팬덤(Fandom)은 어떤 인물이나 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런 문화적 현상을 일컫는다. 아주 오래된 지극히 인간적인 현상이며, 오로지 이익을 위해 상품을 구매하는 일반 소비자와는 구분된다. 팬들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좋아하는 대상에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며 심지어는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데까지 참여한다. 해리포터, 스타워즈와 어벤져스 시리즈, 방탄소년단의 팬클럽과 신드롬이 그렇다.

단순 소비자가 아닌, 팬덤의 역사는 생각 밖으로 오래됐다. 지금의 디지털 시대 이전은 물론, 문자를 읽고 쓰기 전에도 있었다. 15세기 상인 계층의 여성인 마저리 켐프는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 하지만 구술 기록을 통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1438년 세상을 떠날 무렵, 오늘날 ‘팬 픽션(Fan Fiction)’으로 불릴 만한 소설을 만들었다. 팬 픽션은 대중 작품을 대상으로 팬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재창작한 것을 말한다. 켐프는 마리아와 예수,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애를 세세하게 묘사한 글을 남겼다.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을 토대로 자신이 창조한 인물과 현실의 자신을 연결하고 그 안에 자신의 삶을 편입시켰다.

19세기 말의 피아니스트 앨리스 드레이크는 당시 미국 상류층에 유행했던, 지금의 배낭여행 같은 ‘그랜드 투어’를 떠났다. 그는 독일 바이마르에서 10년 전 세상을 떠난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의 집을 찾아갔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원래 내부 입장은 불가능한데 관리인에게 돈을 주고 몰래 들어갔다. 리스트의 소장품에 눈독을 들이고, 관리인에게 부탁해 엽서에 사인을 받았다. 그는 지금의 팬클럽 회원처럼 유명 음악가의 공연 입장권과 악보를 스크랩하고 연주자의 소문을 수집했으며 공연장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산업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팬덤의 접근성과 사회성은 더욱 확대됐다. 현대 소비사회 특징과 맞물려 브랜드 소유주와 소비자 간의 융합이 이뤄지는 ‘팬덤 기반 경제’를 바탕으로 조직적 활동이 가능해졌다.

일본의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 마스코트 하쓰네 미쿠(初音ミク)가 대표적이다. 미쿠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중 한 명이다. 음악 차트 정상을 휩쓸고, 레이디 가가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올랐다. 처음엔 마케팅 수단으로 출발한 것이었지만 미쿠의 소유권을 가진 업체인 크립턴이 ‘비상업적 용도에 대해 무제한 사용을 허용’하면서 팬들이 앞다퉈 미쿠의 창작물을 만들고 공유했다. 팬들은 미쿠가 인간 스타보다 친숙하고, 그를 통해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열광했다.

2014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금융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회사의 대표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다. 주주총회지만 여느 회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마치 종교부흥회, 록 콘서트 같다. 수만 명의 참가자는 버핏의 강연을 듣고, 회사와 관련된 상품을 구매한다. 버크셔해서웨이 속옷, 운동화, 목걸이, 캔디를 기꺼이 산다. 버핏과 버크셔해서웨이 증권은 무한한 신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브랜드에 돈을 지불하지만 팬은 에너지와 시간까지 바친다.

저자들은 장난감 인형 회사인 ‘스퀴셔블(Squishable)’의 공동창업자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팬덤과의 지속적인 소통으로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팬덤이 어떻게 진화해왔으며 팬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고, 팬덤을 통해 브랜드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이들은 “우리가 이미 팬들과 대상, 창작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애매해진 융합의 시대, 팬덤 특이점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며 “이것은 상품과 구매자 간의 소통이 양방향으로 이뤄지는 미래”라고 분석한다. 413쪽, 1만6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