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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북 정상회담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평화, 새로운 시작’을 구호로 한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와 종전선언 그 밖의 다양한 신뢰 구축 조치들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미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며 성공적인 정상회담의 마중물을 내놓고 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 집중 노선을 들고나온 북한의 태도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정상 간의 선언을 통해 정전체제와 군사적 대치를 끝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환영하고 큰 기대로 지켜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합의가 이뤄지고 감동의 모습이 연출된다 해도 남북 간의 전략 균형을 깨뜨리는 핵무기가 북한에 있는 한 한반도 평화는 모래 위의 성일 뿐이다. 핵은 미국의 위협 때문이라는 북한 주장을 그냥 믿는다 해도 그 핵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 위협은 의도와 능력의 합이다. 의도가 불확실해도 능력이 크다면 위협은 커진다. 그래서 핵은 위협이고 한반도 평화의 적이다.

비핵화가 진전을 이루고 신뢰 구축 조치가 더해진다면 모를까 비핵화 진전없는 신뢰 구축 조치는 그 의미가 퇴색된다. 그런데 요즘 들어 비핵화 문제는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라는 인식이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그저 징검다리일 뿐이고 이번에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면 핵 문제가 풀릴 것이란 희망적 사고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고 북한의 협상 태도도 변화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이 내놓은 것은 기껏해야 ‘비핵화 대화를 할 수 있다’ 정도이지 ‘비핵화를 하겠다’가 아니다. 지난 1월 1일 김 위원장이 내놓은 신년사의 메시지는 핵무장, 남북관계 개선, 정권 70주년 기념이었다. 3월 초 북측이 정의용 특사에게 전달한 비핵화 메시지는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가 보장되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조건부 비핵화 입장일 뿐이었다. 지난주 발표된 북한 노동당의 새로운 노선도 핵 문제만 보면 비핵화가 아닌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 동결’을 먼저 선언한 것일 뿐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채 남북관계와 주변 환경을 바꿔보겠다는 ‘핵 있는 평화’를 추구하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도 단순히 ‘남과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6자 회담 9·19 공동성명과 같이 ‘북한의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폐기’ 의사가 담긴 분명한 표현을 담아야 한다. 북측이 자신들만 그런 의무를 이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1991년에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남과 북이 재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물론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전에 비핵화 의지를 구체화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가능하면 높은 몸값으로 미국을 상대하고자 할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양보하며 미국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가능하면 동결의 이름으로 일부 핵 능력을 보유하려 들 것이다. 그 가능성은 낮지만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이러한 제안을 수용한다면 미·북 간 비핵화 합의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북한 핵 위협에 노출된다. 그래서 핵 문제는 미·북 간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며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번 4·27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의 기초를 다지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북핵(北核)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핵 없는 평화, 진짜 평화를 후세에 물려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