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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 駐유엔 대사

지난 20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핵 및 장거리미사일 실험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발표는 이번 금요일 남북 정상회담과 다음 달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앞두고 북한으로서 최악의 규범 파괴자 오명을 의식하고 자신의 진정성을 과시하는 포석으로서, 한·미 정부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발표엔 비핵화나 핵 포기의 내용이 없다. 핵무기 과업이 완료됐으므로 실험이 더는 필요 없게 됐다는 건 오히려 자신의 핵 지위를 반어적으로 확언하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6회를 마지막으로 더는 핵실험을 하지 않으면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김정은은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핵은 현 상황에서 동결하되 완전한 폐기는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한 채 단계적·동시적으로 이뤄 나간다는 입장을 제시하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경제 건설에만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노선 채택은 비핵화를 기나긴 단계의 과정으로 쪼개서 고비마다 한·미로부터 엄청난 반대급부를 뜯어내겠다는 저의일 것이다. 이래서는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동결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긍정적 평가는 시기상조다. 북한의 비핵화를 단기간에 신속하고 완전하게 전문적으로 달성하는 게 타협 불가한 목표임을 생각한다면 아직은 행동으로 나타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CVID)를 약속한다 하더라도 그 후 검증도 매우 중요하다. 유엔 안보리 내에 폐기 감시기구를 설치·운영하는 문제도, 안보리가 5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작동되는 장임을 고려하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날 6자회담 때 검증은 북한 외 5자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맡는 것으로 논의된 바 있다. 또한, 2013년 제정된 북한의 헌법 전문과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 공고화 법령 및 노동당 규약에 포함된 핵보유국 지위도 명시적으로 삭제돼야 한다.

지금쯤 한창 준비 중일 남북 간 정상회담 결과 공동성명문 작성 작업에 대체로 비핵화, 평화체제, 남북관계 진전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되고 있다. 그중 평화체제 구축이야말로 비핵화, 평화협정, 종전협정, 종전선언 등을 망라하는 가장 비중 있고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평화체제의 첫 관문이 비핵화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비상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정전협정은 체결 65년이 지나면서 이를 대체할 항구적 협약의 필요성은 실질적으로 없어졌다. 그동안 북한의 도발이 있었을 뿐 전쟁은 사실상 오래전에 끝났다. 평화는 의지의 문제이지 문서의 성격에 의해 생기는 게 아니다. 남북 간에는 1991년 채택된 훌륭한 내용의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증강, 복원하고 미·중으로부터 인정받아 유엔의 문서로 공식 등록하면 된다.

남북 간 평화협정은 필요하지도 않다. 자칫 비핵화와 직접 연계될 경우 시간만 끄는 핑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술적·이론적 전쟁 상태의 종식을 어떤 식으로든 굳이 해야 한다면, 결혼식 성혼선언과 같은 상징성으로서 종전선언이면 족하다. 다만, 종전선언이 지나치게 과시성 쇼로 변질되면 이 또한 국민과 국제사회에 착시를 일으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미·북 간 외교관계 수립 논의는 별개로 진행하면 된다.

나흘 뒤 문재인 대통령은 8000만 민족과 동맹,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의 운명을 가름할 진실의 순간을 맞는다.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표어는 자강과 주인 의식에 기반한 ‘비핵화, 평화의 시작’으로 읽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