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사이버 무기개발 제한
MS·HP 등 34개 회사 결의
애플·아마존 등은 참여 안해

국가 간의 사이버 전쟁 발발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세계 유수의 정보통신(IT) 기업들이 개인과 기업들을 상대로 하는 국가의 사이버 전쟁에는 협조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IT 업계에서는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시민 등을 보호하기 위한 ‘디지털 제네바 협약’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17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휴렛팩커드(HP), 시스코, 노키아, ABB, ARM 등 34개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보안 콘퍼런스 ‘RSA 2018’에서 무고한 시민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사이버 공격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사이버 전쟁에 대한 입장을 공동으로 결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협약에서 기술 회사·민간 부문·중요 기반 시설을 목표로 삼지 않고, 민간 분야의 사건 탐지와 대응 및 복구를 돕기로 했다. 또한 대규모 행사를 막기 위한 공격적인 작전과 사이버 무기 개발 및 재사용 등을 제한하고, 사용자 등에게 취약점을 보고하는 사항도 협약에 포함했다. 다만 애플, 아마존, 구글 등은 협약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의 기업들은 이번 협약이 국제 사이버전에 대한 규범을 마련할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협약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그동안 사이버 전쟁에 대한 금기나 규정 등이 부재했고, 수많은 개인과 기업이 사이버 공격에 노출됐다”며 “우리는 이 부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스미스 회장은 “세계 각국의 정부를 새로운 디지털 제네바 협정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가장 심각한 공격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네바 협약은 국가 간 전쟁과정에서 민간인과 포로 등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해 1864년과 1949년 사이에 체결된 일련의 국제조약이다. 커스틴 닐슨 미 국토안보부(DHS) 장관은 “규범은 필요하다”며 협약을 인정하고 행동 기준을 세우는 원칙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 숀 캐넉 국제전략연구소 국장은 “생산적이고 필요한 문제 제기지만 무고한 시민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합의도 좀 더 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