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戰 쇼’앞서면 核폐기 또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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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前 외교부 차관

남북 정상회담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18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방법,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그들(남북한)은 (6·25전쟁) 종전(終戰)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는 발언을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7일 우리 대북 특사단을 통해 전해진 북한의 비핵화 입장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체제를 보장해 주면 핵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조건부 비핵화’다. 군사적 위협 제거와 체제 보장 문제는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평화체제가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議題)가 되는 게 이상할 건 없다.

그러면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연결시킬 것인가.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완료하거나 이를 보장하는 조치를 하기 전에는 대북 제재를 완화하거나 당근을 주지 않는 것이다. 대신 북한의 비핵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핵심 의제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상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의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평화협정의 전 단계로서 종전선언 얘기가 나왔었으나,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논의 축복’ 얘기는 종전선언을 하자는 말은 아닐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자동으로 종전이 선언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평화협정 제1조에 종전을 선언하는 문구가 들어간다.

우리는 ‘선언적 평화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종전선언이 필요 없을 정도의 ‘실질적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미·일과 북한이 국교를 정상화하고, 본격적 대북 경제 협력이 시작되며, 남북한 군사력 배치와 규모를 조정하고, 주한미군의 역할을 재조정하며,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의 조치가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6·25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이러한 포괄적 조치, 즉 한반도 평화체제 구성 요소의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를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중국 시진핑 주석과 만나 핵 문제의 ‘단계적·동시적 접근’을 주장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수없이 들어온 용어다. 북한의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맞바꾸는 ‘일괄타결’ 방안에 대해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비핵화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안이한 생각에 우리가 4·27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접근을 내세워 남·북 종전선언→미·북 종전선언 그리고 (마지막 단계의 서명 주체는 모호하게 남겨둔 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북한과 한·미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맞바꾸는 일괄타결을 하더라도 이행 단계에서 북한이 ‘종전선언을 했으니 대북 제재와 압박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불응할 경우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 이행을 거부하며 시간을 끌 것이다.

우리는 종전선언이 아닌 포괄적 평화체제 구축을 내세워 ‘북핵 동결 대 미·북, 일·북 관계 정상화 교섭’ ‘핵 폐기 대 평화협정 체결’ ‘핵 폐기 검증 완료 대 대북 제재 해제, 관계 정상화,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과 유사한 신속 이행 방안을 관철시켜야 전략적 우위에 설 수 있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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