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국내도 아닌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로부터 ‘블랙리스트’ 의심과 비판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 재판에서 24년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블랙리스트 문제가 자세히 언급된 직후여서 더 충격적이고 기막히다. 문제의 핵심은, 문 정부가 올 6월부터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키로 결정한 배경이다. 청와대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측은 USKI의 불투명성과 성과 부족 등을 들고 있지만, USKI나 미국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재정 지원을 무기로 삼아 특정 성향의 특정인 퇴출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최근 국내외 일련의 다른 사례들과 겹치면서 신(新)블랙리스트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KIEP를 통해 매년 20억 원을 USKI에 지원해왔다. 이에 대해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은 “조윤제 주미 대사 등으로부터 구재회 USKI 소장 교체 요구를 받아왔다”고 공개했다. 또 “이번 일은 청와대의 한 사람이 개인적 과제로 추진한 것”이라고 밝혀 청와대 개입설도 뒷받침 했다. 지난해 KIEP측이 USKI에 보낸 이메일에서 홍일표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연구소 개혁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한 사실도 드러나 청와대의 ‘비개입’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청와대 측은 USKI의 연구도 허접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USKI는 매년 KIEP에 예산집행 내역과 방대한 분량의 사업 내역을 보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의 USKI 압박 사태는 세종-LS 객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일보 등 국내외 매체에 칼럼을 써온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미 국무부 한국과장이 돌연 세종연구소와 계약을 종료당한 일, 정년이 보장된 국립외교원 S교수가 민간연구원으로 옮긴 일, 탈북자 1호 박사인 안찬일 씨의 종편 출연 정지 등에 이어 발생했다. 게다가 특정 인사 경질을 요구하는 식으로 우격다짐을 했다면 미국의 싱크탱크 문화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행태다. 워싱턴에서는 이 사태를 학문의 자유 문제로 접근하면서 문 정부 폐쇄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블랙리스트 논란도 넘어 국격 훼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