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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중국은 벌써 대북 제재의 김을 빼기 시작했다. 지난 달 북·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북한의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한편 자국에 머무르고 있는 탈북자들은 대거 체포한다고 한다. 북한이 ‘대화 분위기’로 전환한 이후의 일들이다.

북한이 올 들어 갑자기 대화로 나오게 된 것은 미국의 최대 압박으로 초래될 경제적 파국에 대한 두려움, 국가 핵무력을 완성했다는 자신감,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코피 전략)에 대한 우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적절한 중재 노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역대 최강 글로벌 압박 캠페인에 맞서 우군을 확보하는 한편, 미·북 정상회담 결렬 시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국면을 보는 미국의 시각은 분명하다. 북한을 대화로 나오게 한 가장 큰 동력은 글로벌 압박 캠페인이 효과를 내기 시작한 때문이며, 따라서 현재의 최대 압박을 유지하면서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제재를 완화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전체 과정을 처음부터 재시작해야 하므로 최대의 압박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같은 이유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변함없이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북 정상회담이 5월로 예정된 가운데서도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대상 49개 개인과 단체를 추가함으로써 ‘최대의 압박’을 늦출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서조차 북핵 타결 때까지 한·미 FTA 서명을 미룰 수도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한국이 대북 압박 전선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경고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화도 시작하기 전에 중국이 대북 제재 완화 조짐을 보이는 건 걱정스러운 사태다. 미국이 무역으로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은 대북 제재 해제 카드로 미국을 흔들겠다는 심사다. 중국이 대북 압박 전선의 김을 빼는 스팀 밸브 역할을 하면 제재 효과가 크게 줄어들 게 뻔하다. 북한은 그 빈틈을 헤집고 핵을 쥔 채 다시 회생의 가능성을 엿볼 것이다.

그런 가운데 북·중 정상회담 이후 양측 접경지역에서는 중국이 곧 대북 제재를 완화할 것이란 소문이 나돈다고 한다.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가운데 ‘중국 패싱’이 거론될 정도로 소외감을 느낀 중국은 북·중 정상회담 이후 제재 완화라는 선물을 주는 수순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중국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동의했기 때문에 이를 가시적으로 위반할 순 없고 밀무역 단속 완화나 통관절차 간소화 등으로 편의를 봐줄 것으로 보인다. 북핵 폐기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대북 제재가 완화돼선 안 된다.

한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세 가지 원칙을 확고히 견지해야 한다.

첫째, 완전하고 포괄적인 CVID 방식의 핵 문제 해결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이 내세우는 단계적, 행동 대 행동 원칙에 휘둘려 지난 20여 년간 반복된 합의와 배반의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둘째, 비핵화 시한과 일정에 대한 준수다.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이정표를 엄격히 설정하고, 북한이 이 과정을 역전시키면 더욱 강한 제재가 자동 복원되는 스냅백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대북 압박 전선을 유지하는 데 적극 협력해야 한다. 한국이 앞장서서 제재 완화에 나서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