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9일 오전 강원 고성군 죽왕면 가진리 한 할머니가 산불로 전소한 집으로 돌아와 반갑게 개를 안고 있다. 연합뉴스

- 마을 턱밑까지 할퀴고 간 ‘고성 산불’

“새까맣게 타버린 묘소 잔디
부모님 피부 같아 가슴아파”

郡 환경자원사업소도 ‘폐허’

“새까맣게 탄 잔디가 부모님 피부같이 느껴져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29일 오전 강원 고성군 가진공설묘원은 여전히 탄 냄새로 가득했다. 전날 간성읍 탑동리 야산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 묘원 일부가 소실됐다. 불은 꺼졌지만, 검게 그을린 조상의 묘를 바라보던 후손들의 슬픔은 현재진행형이었다. 한 노부부는 “자주 벌초라도 했으면 덜 뜨거우셨을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묘 외부를) 대리석으로 할 걸 그랬다”며 “부모에게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만 같다”고 흐느꼈다.

고성군 환경자원사업소는 이번 화재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고성군 주민들의 모든 생활 쓰레기가 모이는 시설로 하루평균 47t 규모가 이곳에서 처리된다. 주민들은 당장 쓰레기 처리 문제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고성군청 관계자는 “다행히 2016년부터 속초시와 유사시 쓰레기 처리 관련 계약을 맺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오늘 오전 중은 처리가 어렵겠지만, 오후 중 각 가구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반입해 속초시로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날 저녁 큰불이 잡히자 인근 가진리·공현진리 등 주민 400여 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불씨가 마을 턱밑까지 닥쳤던 순간의 공포감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가진리에 사는 박정희(여·57) 씨는 “처음엔 어디서 쓰레기를 태우는 건가 생각했는데, 점점 연기가 매캐해지더니 앞도 안 보이고 목이 아프면서 눈물이 줄줄 나오더라”며 “서울에 있는 아들이 전화해서 ‘엄마 괜찮아? 다친 데 없어?’하고 물었다”고 말했다.

가진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60대 여주인은 “영업을 못 할 걸 알면서도 마음이 초조해 가게에 나왔다”며 “눈앞에 시뻘건 불이 타오르고 있었지만, 한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을 혹시나 잃을까 봐 대피할 생각보단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말했다. 그는 검게 그을린 두 손을 취재진에게 펼쳐 보이기도 했다.

고성=김성훈·김수민 기자 powerkim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