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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연세대 교수 국제정치학

북한 김정은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보름 앞둔 상황에서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던 것과 닮은꼴이라고 분석한다. 그때도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 그 사실은 나중에야 발표했다. 하지만 일촉즉발의 지금과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이란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미·북 관계에 훈풍이 불던 때였고, 이듬해 1월 상하이 방문으로 김정일의 신사고(新思考)가 경제 개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었다.

김정은의 이번 방중(訪中)은 북한의 몸값을 올려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거나 북·중 관계를 복원하고 또 북한이 원하는 대로 판을 짜기 위한 외교적 승부수라기보다, 중국의 ‘호출’일 가능성이 더 크다. 중국은 북한이 주도적으로 동북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땐 강력한 경고와 함께 앞길을 가로막곤 했기 때문이다. 이번 방중은 압록강변의 단둥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역들에 대해 중국 당국이 내린 경호 조치만 면밀히 관찰했어도 충분히 사전에 탐지할 수 있었다.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외교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4개월 뒤인 10월 김정일의 최측근인 조명록이 워싱턴을 방문, 인민군 차수 계급장을 단 채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다. 클린턴 행정부도 10여 일 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을 북한에 급파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회고록 ‘마이 라이프(My Life)’에는, 자신의 방북과 미사일 금지를 위한 협상 일정이 조율됐지만 중동 평화협상에 밀려 무산됐다는 얘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김정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01년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스크바 선언’을 통해 소련 해체 이후 소원해졌던 북·러 관계를 복원시켰고, 2002년 9월엔 당일치기로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 사실을 순순히 밝히는 ‘고백 외교’를 펼쳐 대일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여세를 몰아 자신의 신사고를 실천에 옮기려던 김정일의 야심 찬 계획은 중국 공안 당국이 양빈 신의주경제특구 장관을 체포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제특구를 중국 접경지역을 피해 건설해 달라는 몇 차례 권고를 듣지 않자 북한이 공식 임명한 장관을 체포한 것이다. 양빈이 네덜란드와 중국의 이중국적자였지만, 중국의 품을 떠나 독자적 외교 노선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경고 또는 길들이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중국으로선 지금 북한의 외교 행보가 곱게 보일 리 없다. 경제발전을 위해 역내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에는 미국과 일본 쪽으로 미사일을 마구 쏴대더니, 중국이 강군몽(强軍夢)을 꾸며 전통적인 동북아 질서를 재건하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지금에는 그들과 얼굴을 맞대려고 한다.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미·북 정상회담까지 하기로 어젠다가 설정돼 있는 상황이다. 일본도 북한과의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이번 김정은 방중의 초점은 북한이 아닌 중국에 맞춰져야 한다. 제국몽을 꿈꾸는 시진핑 주석이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보여줬던 독자적 외교 행보가 재현될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문단속’ 외교를 펼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예측이 힘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빅딜이나 남북관계의 급진전으로 중국의 안보적 완충지대에 균열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한 포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