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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前 주미 대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가안보보좌관에 초강경 존 볼턴 대사를 임명했다. 볼턴은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이란과 북한의 핵을 막자는 입장이다. 전임 허버트 맥매스터와는 다른 초강경 입장이다. 볼턴 대사와는 2015∼2016년 유엔 대사 시절 같이 일한 경험이 있다. 살펴볼수록 특이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상대편의 말을 경청하는 조용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회의에 나가거나, 언론을 대하면 외교적 절충이 어려운 강경한 입장을 취한다. ‘항복은 사전에 없다’는 그의 책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볼턴 반대파가 많지만, 그의 초강경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중 한 사람이다. 트럼프-볼턴 팀은 어떻게 북핵 문제를 운영할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5월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핵을 피할 수 없다. 그때 그는 트럼프-볼턴 팀 앞에서 진실의 순간을 맞게 된다. 김 위원장은 서울을 통해 워싱턴에 비핵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비핵화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핵과 경제 동시 추진이라는 병진(竝進) 노선을 포기하고 경제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핵무력 완성’을 손에 넣고 적절히 협상을 해나가겠다는 것인지가 불투명하다. 트럼프-볼턴 팀이 명백한 답을 요구할 것이다.

비핵화는 한국이나 미국의 외교가 아니라, 결국 생존을 추구해야 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에 달려 있다. 한마디로 병진 노선의 포기 또는 견지, 이것이 관건이다. 여기에 따라 조건들이 변하기 때문이다. 평양은 2016년 7월 6일 북한의 ‘비핵화 5대 조건’을 밝혔다. 남조선 주변의 비핵화와 주한미군의 철수가 포함돼 있다. 북한이 미·북 회담에서 이러한 입장을 견지한다면, 미·북 회담은 성사되지 않거나 성사돼도 성과 없이 끝나게 된다. 이 경우 미국은 ‘다음 단계’로 들어갈 것이다.

트럼프-볼턴 팀이 구상하는 ‘다음 단계’는 북한이 추가적 도발을 하게 되면 제한된 정밀타격으로 직접 맞선다는 것이다. 볼턴 대사는 이런 공격을 강행하자는 입장을 최대한 취할 것으로 보인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가 그의 모토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한반도 전면전을 유발할 수 있다.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닥칠 진실의 순간이 된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비핵화를 우리와 협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긴장 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하게 된다. 북한도 적극 따라올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를 피해 가면서 ‘핵무력 완성’ 이후 나갈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제재에 묶여 있는 경제 부문은 어렵다.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의 한계는 중국이 정한다. 그러나 제재의 해소는 미국이 정한다. 트럼프-볼턴 팀은 비핵화 진전이 없는 제재 해소에 반대하고 있다.

독일 통일 당시 거의 모두가 소련은 전쟁 없이 동독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 북핵 문제도 김 위원장의 결단에 기대를 해보자. 그러면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가 그려진다. 그러나 북한이 병진 노선을 고집할 경우 미·북 회담은 실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5월 진실의 순간 이후, 북한은 미국을 겨냥한 추가 도발을 할 수도 있다. 이를 막아야 한다. 우리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이런 가능성을 억제하는 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이 미국의 ‘다음 단계’에 대비한 우리의 최선의 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