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6일 개헌안을 공식 발의(發議)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사흘 동안의 대국민 설명을 거쳐 22일 공개한 헌법 개정안 전문(全文)을 보면 과연 ‘개헌 성사’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내용에 문제점이 많다. 헌법은 국가 최고 규범인 만큼 국민의 압도적 동의가 필수적인데, 더불어민주당 당헌(黨憲)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일방적·편향적이기 때문이다.

전문(前文)엔 각 지역 민주 항쟁을 나열하고, ‘자연과의 공존’ 등을 문맥에도 맞지 않게 추가하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보편적 합의를 담은 게 아니라, 진보·좌파 이념을 집중적으로 끼워 넣었다. 권력 분산 의지가 미약할 뿐만 아니라, 지나친 노동권 강화 등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나라의 국체(國體)를 훼손할 만한 조항이 너무 많다. 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사형제, 헌법재판관 자격 등과 관련해 ‘독소 조항’이 될 여지가 있는 문구도 수두룩하다. 한 조항만으로도 긴 시간 논의가 필요한 쟁점들이다.

청와대의 개헌 발의 절차는, 헌법이 문제가 아니라 운용이 문제임을 새삼 보여준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분산하자는 것이 개헌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인데, 개헌안의 준비 및 확정·발표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의 무소불위와 자의적 국정 시스템을 드러낸 셈이다. 헌법 제89조는 ‘헌법개정안’을 국무회의 심의 의무 사항으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지만, 이런 절차를 전혀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발의 직전에 국무회의에 상정하면 된다고 하지만, 국무회의를 요식행위로 여긴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그런 국무회의나마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지도 않고 해외에서 전자결재로 발의한다고 한다. 국민과 헌법 무시가 지나치다.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병행이 문 대통령 공약이지만 이미 실기(失機)했다. 일단 발의하면 20일 이상의 공고, 공고 60일 이내의 국회 의결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런 졸속·편향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없다. 그대신 국정 블랙홀로 정쟁만 부추길 것이다.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미·북 정상회담, 미국과 중국의 통상 전면전 등 국가적 중대사가 첩첩산중이다. 문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국회에 맡겨 시간을 갖고 신중히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파 지도자 아닌 국가 지도자라면 이쯤서 접는 게 정도(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