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때 신이 당신에게 사랑하라고 주셨던 불완전한 사람을 봐줘요.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신이 허락하신다면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조금이라도 좋아해 보도록 해요. 제발 다시 불완전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사람이 되어줘요.”(38쪽)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우리 시대 휴머니스트, 소설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의 초기 단편 ‘제니’에 나오는, 드라마틱한 대화 일부분이다.

‘제니’의 주인공은 열여덟 살에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 공학자 조지. 가전제품회사 개발 담당자인 그는 자신이 만든 인간 모습의 냉장고 로봇 제니에 빠져, 부인을 버리고 평생 제니와 함께 전국을 떠돈다. 그는 길 위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제니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쁨을 얻었다. 그의 일상이란 갈수록 완벽하고, 예쁘고, 똑똑해진 제니를 내세워 제품을 프로모션하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곧 세상을 떠날 그의 전처가 그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해온다. 이어 언제나 반전과 위트, 예상치 못한 사연을 준비하는 보니것의 소설답게 조지의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공학에 빠져 사랑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사랑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알게 된 두려움, 완벽한 사랑이 현실과 부딪혀 마모돼 가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완벽주의. 결국 그는 부인을 본뜬 제니를 만들어 현실에서 달아나 버렸다.

그런 그에게 부인은 자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 불완전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사람으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아주 합리적이고 믿을 만한 목소리’로 평가받았던 보니것은 이 작품에서도 우리의 불완전함이란 언제나 초라하고 또 초라하지만, 누구도 가닿을 수 없는 매끈한 완벽함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만큼 상대도, 상대만큼 나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한다.

‘제니’는 이번 주에 나온 보니것의 소설집 ‘세상이 잠든 동안’(문학동네)에 수록돼 있다. 이는 보니것의 미발표 초기 단편 중에서 보니것식 휴머니즘의 시원을 볼 수 있는 작품 16편을 선별해 묶은 것이다. 하루하루를 애면글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400쪽, 1만5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