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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영국·러시아 관계가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 독살시도 사건으로 외교관 맞추방 사태로까지 악화한 상황에서 지난 18일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아주 특별한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22일 세상을 떠난 러시아 출신의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를 기리는 오페라 갈라쇼였다. 소프라노 조수미와 러시아의 안나 네트렙코, 라트비아의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란차, 아제르바이잔 출신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등 오페라계의 별들이 한자리에 모여 ‘디마’라는 애칭으로 불린 친구 흐보로스톱스키 추모 무대를 꾸민 것이다.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출신인 흐보로스톱스키는 27세 때이던 1989년 여름 영국 카디프 세계성악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며 세계 성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미국과 유럽의 오페라 무대 주역으로 활동했는데, 190㎝가 넘는 헌칠한 체격에 연기력까지 겸비해 ‘오페라계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렸다. 토머스 햄프슨, 브라이언 터펠과 함께 3대 바리톤으로 꼽히기도 한 그는 늘 오페라 무대의 주역이었다. 그는 1991년 소련 해체 후 절망에 빠진 러시아인들을 러시아민요와 가곡을 통해 위로하며 구소련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을 한데 이어주는 역할을 한 국민성악가이기도 했다. 그는 오페라가수로는 처음으로 2004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대형 음악회를 열었고, 이듬해에는 2차대전 승리 60주년 기념 러시아 전국 순회 음악회도 개최했다. 흐보로스톱스키는 뉴요커 인터뷰 때 “어렸을 때는 국제무대에 서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러시아적인 것에 끌리게 된다”며 러시아 음악 유산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가 펴낸 러시아 민요집 ‘검은 눈동자’ ‘모스크바의 밤’과 대독(對獨) 항전 때 전장에서 불린 ‘내 형제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를 기다려주오’ 등은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 음반이 됐다.

어둡고 깊은 음색을 지닌 흐보로스톱스키는 특히 미국인들이 사랑한다. 지난해 말 뉴욕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주제페 베르디 레퀴엠 공연이 있었고, 오는 6월 뉴욕 오페라 축제에서도 뉴암스테르담 오페라단이 도니체티의 ‘라 파보리타’ 공연을 그에게 헌정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으로 미·러 관계는 최악이지만, 흐보로스톱스키의 음악 유산은 미·러를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