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1일 오후 세종시 보람동 세종시청 앞 택시승강장이 승용차만 불법 주차된 채 텅 비어 있다. 세종=김창희 기자

세종·용인·동탄·안동·예천…
응급상황·야간회식 때 발동동
호출하면 장거리 손님만 태워
市에 민원했더니 “車 사세요”

인접도시 공동영업 해결책도
신도시 택시업계 반발로 스톱

“세종시 택시 타기 어렵네요. 카카오, 티맵으로 택시 콜을 수차례 불러도 오질 않아요. 너무 근거리라 그런지 아예 안 잡히네요.” “30분째 기다리고 있습니다. 길에서도 안 잡히고 카카오택시도 답이 없어요.” 세종시를 비롯한 전국 신도시 주민들의 택시 이용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신흥도시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몰리면서 택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택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가 지속돼 주민들만 골탕 먹고 있다.

21일 오후 세종시청 앞 택시승강장은 대기 택시가 한 대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시의 한 공무원은 “세종시 신도시 지역은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기 어렵다. 택시승강장에서 택시 타기는 더 어렵다”고 말했다. 전업주부 김모(35) 씨는 “애가 아파서 급하게 병원에 가려고 해도 호출 택시가 오지 않는다”며 “시청에 문의했더니 ‘불편하면 차를 사시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이모(44) 사무관은 “야근이나 회식이 끝나는 야간 시간대에는 택시가 자취를 감춘다”며 “회식 장소로 아름동이나 도담동 지역이 인기 있는 이유는 택시 대신 BRT버스라도 탈 수 있어서다. 교통이 불편한 종촌동 등은 아예 야간 회식을 기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종시 택시난의 근본 원인은 공급 부족 때문. 도시 특성상 높은 요금을 받을 수 있는 장거리 손님이 많은 반면, 택시가 부족하다 보니 택시기사들이 ‘돈 되는 손님’만 골라 태우려 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은 한 번 운행에 2만∼3만 원을 받을 수 있는 KTX 오송역, 대전 유성, 조치원 방면 등 장거리 운행을 선호하는 반면 근거리 손님은 꺼린다. 세종시 관계자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택시를 호출하는 경우 목적지가 뜨기 때문에 택시기사가 더욱 운행을 기피하게 된다”며 “인구 증가율 등을 감안해 택시를 제때 증차해야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택시 총량제 규제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세종시에서 영업 중인 택시는 총 342대. 지난해 282대에서 올해 초 60대를 증차해 약간 숨통이 트였지만, 전량 개인택시만 늘리는 바람에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시민 임모(54) 씨는 “개인택시 기사는 저녁 무렵이면 퇴근해 야간 택시난 해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신도시 주민들도 비슷한 불편을 겪고 있다. 경기 수원시에 직장을 다니는 용인시 흥덕지구 주민들은 시계 할증 탓에 택시를 잡기가 쉽지 않다. 흥덕지구는 삼성전자 삼성전기를 비롯한 각종 협력업체가 즐비한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과 불과 수 ㎞ 남짓한 가까운 거리이지만 택시를 잡으려면 적지 않은 승차거부를 감수해야 한다는 게 승객들의 하소연이다.

생활권이 수원과 겹치는 화성 동탄과 병점 등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화성으로 향하는 승객이 많은 지하철 1호선 수원역 앞에는 택시들이 2, 3개 차로를 점거하며 영업을 벌일 정도로 많은 택시가 모이지만 화성으로 가려는 승객에게는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동탄신도시에 사는 직장인 박모(여·28) 씨는 “차라리 수원과 화성의 영업구역을 통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일대에 조성된 경북도청 신도시 주민들도 택시를 이용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경북도청 신도시는 상주인구 1만여 명에다 69개의 유관 기관과 단체가 들어섰지만 신도시 내 운행 택시는 한 대도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경북도청 동문이나 서문에서 신도시로 갈 경우 대부분 25~30분 정도 걷거나 간간이 이동하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경북도청 신도시에 거주하는 김모(55) 씨는 “밤 시간대에는 버스마저 없어 집 부근 외에서 모임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도시 지역과 인접 도시 간 영업구역 제한을 풀고 공동영업을 하는 방법으로 택시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신도시 지역 택시업계의 반발로 진전은 거의 없는 상태다. 대전 택시업계는 대전 인구의 세종시 유출로 영업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반면, 세종시의 택시 부족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대전 택시업계는 지난해 10월부터 세종시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택시에 ‘행정수도 개헌 반대’라는 스티커를 부착한 채 운행하며 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안동시와 예천군은 2016년 3월 두 지역의 시·군 경계 할증료를 폐지하고 신도시를 운행하는 택시에 대해 할증료와 기본료 등을 보존해 택시 운행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신도시 내 택시 승객들의 행선지에 따라 추가 요금이 발생하는 문제로 무산됐다.

인접 중소도시와 신도시 간 교통요금 체계의 단일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05년 전남 무안군 남악신도시에 전남도청 청사가 들어선 뒤 남악신도시와 목포를 오가는 택시요금은 당초 20%의 시외할증요금을 적용했다. 양 지역을 오가는 승객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전남도와 목포시, 무안군은 2008년 6월 양 지역 택시요금 단일화를 추진해 동일요금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세종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세종시처럼 신도시로 인구가 급증한 지역은 택시를 늘려야 하지만 정부의 총량제 규제와 기존 택시업계의 이해관계 등에 묶여 탄력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며 “택시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방안과 함께 대전 등 인접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공동영업 방안에 대한 협상의 문은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창희 기자 chkim@, 무안=정우천·안동=박천학·수원=박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