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통상 질서에서 미국의 중국 포위작전과, 중국의 미국 포위작전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다. 미국이 수입 철강에 25% 관세 부과 등의 조치를 23일 시행하기에 앞서 ‘예외 요구’ 국가들에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 공동대응 및 안보협력 강화를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관세 폭탄을 맞지 않으려면 ‘반중(反中) 통상 동맹’에 동참하라는 요구이다. 이미 캐나다와 멕시코, 호주는 예외를 인정 받았고, 한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한 결론이 금명 나온다.

한국은 그간 ‘안보는 동맹인 미국과, 경제는 인접한 중국과 협력한다’는 식으로 대처해왔다.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인데, 그럭저럭 잘 작동해왔다. 그런데 사드 문제로 중국과의 정·경 분리가 작동하지 않게 되고,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세계 통상정책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이런 전략이 유효했던 것은 근원적으로 미·중 협력 관계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의 공산당 체제가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속에서 개혁·개방을 통해 자유화로 나갈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했지만, 이젠 중국의 패권국가 조짐을 정면으로 견제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 결과, 서방국가들을 향해 안보는 물론 경제 측면에서의 포위망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통상정책은 많은 문제가 있다. 통상전쟁을 하면 미·중 모두 손해를 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한국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조짐도 뚜렷하다. 백악관은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내정자는 2003년 이라크전 때의 ‘의지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 개념까지 동원하고 있다.

정부의 현명한 대응이 절실하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 대사는 ‘안미경미(安美經美)’를 충고했다. 안보든, 경제든 대한민국이 택일을 강요받을 때 해야 할 선택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