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정상회담 시사

“남북·북미회담 장소 따라
더욱 극적인 모습 될 수도”

‘낮은 수준의 남북연합기구’
안보당국 일각서 창설 주장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회 2차 전체회의를 주재하면서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의 진전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향후 미국의 북 비핵화 요구와 북측의 완전한 체제보장 요구 사이에서 남측이 중재하는 걸 넘어 협상의 주체로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중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또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은 회담 자체가 세계사적인 일”이라며 “장소에 따라서는 더욱 극적인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은 미·북 정상회담 장소의 유력한 후보지로 1953년 정전협정을 맺었던 판문점을 의식하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와 관련,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개최지인 판문점이 그대로 5월의 미·북 정상회담 개최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중재자인 문 대통령이 참여하는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지 않으냐는 전망도 나온다.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전문가들은 북 비핵화와 체제보장이 핵심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과거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미·북 협상의 역사를 고려할 때 향후 북 비핵화를 조건으로 미·북 평화협정 체결 혹은 미·북 관계 정상화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미·북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 노동당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즉각 받아들이면서도 미국은 일관되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핵 폐기를 지속적으로 북한에 요구 중이다.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 지명자가 미·북 정상회담 준비 최전선에 나선 만큼 이 원칙은 더 강경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북한은 미국이 무력으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해야 핵·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의 입장에서는 6·25전쟁 종전을 선언하면서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으로 돌리며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인 셈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고민은 이 지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비핵화 입구’와 ‘평화협정 입구’로 동시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북이 CVID에 맞서 CVIG,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체제안정 보장’을 요구할 경우 이를 담보해줄 카드가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안보 당국 일각에서 ‘낮은 수준의 남북연합기구’ 창설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으로서는 확실한 체제보장 방안을 제시해 북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남·북·미 3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서 양측의 담판을 중재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공약이나 베를린선언에서 내놓은 ‘북한 체제의 안정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제도로 보장되는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방안이 남·북·미 정상회담의 주요한 의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이 21일 회의에서 “이번 회담들과 앞으로 이어질 회담들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 핵과 평화 문제를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