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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이성자 화백이 1990년에 완성한 작품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5월 2’ 부분. 한국행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환상적인 알래스카 풍경에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며 크기는 150×150㎝로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작업했다. 이성자기념사업회 제공
- ‘근대 추상회화 대표작가’ 이성자 화백 탄생 100주년 재조명
1951년 가족과 헤어져 파리유학
구상서 추상·목판화 오가며
예술적 성취와 투혼 불태워
유럽 화단에서 먼저 기대감
54년동안 1300점 회화 남겨
판화·도자기 등 1만4000점
22일부터 현대미술관 특별전
佛 투레트선 2개월간 초대전
“지구 반대편을 오가며 대지의 생명과 우주의 그리움을 그리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의 이성자기념관 3층에 있는 이성자(1918∼2009·사진) 화백 흉상(이영학 작) 앞 좌대에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남긴 글이다. 유족들은 이 글에 생전의 이 화백 삶과 예술이 응축돼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화백은 한국 근대 추상회화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국내 화단보다는 예술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1975년에는 김환기(1913∼1974), 남관(1911∼1990), 이응노(1904∼1989) 등의 대가와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여, 국제적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회화로부터 목판화, 도자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에 파리 화단에서는 ‘여자 피카소’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이성자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그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성자 화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22일부터 7월 29일까지 과천관에서 개최한다. 전시에는 회화, 판화 등 127점과 아카이브(포스터, 드로잉, 목판, 모자이크, 도록 등)가 출품된다. 또 이 화백이 작업했던 프랑스 남부 투레트 시립미술관에서도 7월 7일부터 2개월간 이성자 초대전이 열린다.
이성자 화백에 대한 일반의 인지도는 수화 김환기나 고암 이응노 등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미술 전문가들은 그의 예술적 성취와 투혼은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 초기는 한마디로 고군분투를 연상시킨다. 1951년 6·25전쟁이 한창일 때 이 화백은 가족과 헤어져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오갈데 없는 무명의 처지에 그림과의 고독한 씨름이 계속됐다. 그렇게 10년… 서서히 이성자 이름이 화단에 오르내렸다. 현지 평론가들은 한국적 정신성과 동양의 유산을 간직한 채 특유의 추상 예술로 발전시킨 그에게 감탄했다. 파리의 대형 화랑인 샤르팡티에 등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 초대전이 이어졌다.
그리고 1965년 그리운 고국에 돌아와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유화 37점, 판화 40점으로 구성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었다. ‘지구 반대편’으로부터의 ‘눈물의 금의환향’이었다. 그러나 귀국은 일시적이었고, 이 화백은 프랑스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이 화백은 여성과 대지, 동양과 서양, 지구와 시간, 인간과 우주 등으로 끊임없이 주제를 심화 발전시켰다. 형식도 회화, 판화, 도자에 구애되지 않았다. 2007년쯤 한 인터뷰에서 “예술가가 자기가 그 작품이 인기가 있다고 그것만 계속하면 고마 말살이야. … 일부러 앞서가야 된다고. 그 자리 있으면 안 돼. 그 자리 있음 내가 죽는 거지”라는 작가의 말도 그래서 더 실감 난다. 그 같은 열정으로 2008년까지 무려 1300여 점의 회화를 비롯, 1만4000여 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성자기념사업회는 이 화백의 아들인 신용극(73·유로통상 회장) 이성자기념사업회장이 운영 중이다. 신 회장은 올 한 해 상설전시와 함께 소장처 확인을 통한 도록 작업을 계속하며 세미나 등도 개최할 예정이다.
정준모(미술평론가)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파리로 그림 유학의 길을 표표히 떠난 이성자는 근대의 틀을 깨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틀을 넘어서서 그리고 창조자로서의 여성상을 몸으로 실천한 선각자였다”며 “그의 예술 또한 파격의 그것 자체였다”고 평가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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