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軍에서 지워지는 안보·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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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어느 나라든 집권 세력이 바뀌면 정권의 ‘입맛’을 헤아려 하부 조직들이 알아서 바꾸는 것이 적지 않다. 그런 현상인지는 몰라도 교육부가 관여하지 않는 가운데 이번 봄학기부터 사용되는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서 근대사 부분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뀌었고,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문장은 아예 삭제됐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서술도 더욱 더 부정적인 내용으로 바뀌고, ‘일본군위안부’ 관련 내용이 새로이 삽입됐다고 한다.

초중고 통일교육 교재(敎材)에도 6·25 남침에서 천안함 폭침에 이르는 ‘북한 도발사’가 통째로 삭제됐고. 군 정훈(政訓) 교재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 표현들이 지워지고,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서도 ‘친북·종북’ ‘주사파(主思派)’ 등의 표현이 사라진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한국교총은 “정권 입맛에 맞게 교과서가 일관성 없이 수시로 바뀌면 아이들의 가치관 인식에 좋지 않다”고 논평했다. 아이들의 영혼을 좀먹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죽이는 이런 현상에 대한 교총의 대응 논리가 이 정도라면 매우 실망스럽다.

좌성향 역사교과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우파 정부가 집권한 기간에도 중·고교의 교과서들은 반(反)대한민국적 계급투쟁 사관에 입각한 근대사를 기술하고 있었고, ‘좌파적 카르텔’ 아래서 우성향 교과서는 아예 채택되기도 어려웠다. 이를 시정(是正)하려고 했던 것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였지만 탄핵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좌성향 집필자들이 날개를 단 것처럼 느끼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는 교육부에 묻고 싶다. 모든 나라는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상징과 명분을 찾으며, 어릴 때부터 애국을 가르치고 국기(國旗) 예절을 교육한다. 국민적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없는 영웅도 만들어 내려고 안달한다. 이런 중에 유독 한국의 교과서들이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나라로 가르쳐야 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140여 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현대사의 기적을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부끄러운 역사인 듯 가르쳐야 하는가? 이런 일들을 보면서 교육부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인가?

국방부에도 묻고 싶다. 핵 보유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체제경쟁에서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최대 안보위협국인 대한민국이 아이들에게 조국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모자라 장병들에게 북한의 도발사를 가르치지 않으면서 강군(强軍)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가? 나라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신세대 병사들에게 정훈교육만 시키면 갑자기 주적(主敵) 개념이 생겨나고 조국 수호의 의지가 용솟음치는가? 무수한 호국 영혼들이 산하를 떠도는 중에 어제도 오늘도 숱한 젊은이가 나라를 지키다가 전사하거나 불구가 되는 나라에서, 주적 개념을 허물면 어떻게 국방을 하고 어떻게 동맹을 관리하자는 것인가?

남북이 함께 잘사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목표지만, 이는 확고한 안보 위에서 가능하며, 자라나는 세대에 애국심과 자부심을 길러주는 것은 안보의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남북 상생으로 가는 정도(正道)는 도발을 통해 얻을 것이 없음을 북한에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평양의 눈치나 보고, 교과서에서 북한이 싫어하는 부분들을 삭제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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